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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4. 20:57

그랬으면 좋겠네

그랬으면 좋겠네/ 이시하 애인이 빨리 늙어 소처럼 느리고 순해지면 좋겠네 빨리 늙은 애인이 느지막이 일어나 찬 없는 밥을 우물우물 먹고 나서 산수유 꽃 피었드만, 그거나 보러 가지, 그랬으면 좋겠네 사람구경도 참 쏠쏠하구먼, 천천히 걷지 뭐, 그랬으면 좋겠네 강 언덕에 시름도 없이 앉아서는 노을빛이 퍽 곱구먼, 그랬으면 좋겠네 주름진 내 손을 슬쩍 당기며 거 참, 달빛 한 번 은근하네, 그랬으면 좋겠네 애인이 빨리 늙어 꾀병 같은 몸사랑은 그만두고 마음사랑이나 한껏 했으면 좋겠네 산수유 그늘 아래 누워 서로의 흰 머리칼이나 뽑아주면 좋겠네 성근 머리칼에 풀꽃송이 두엇 꽂아놓고 킥킥거렸으면 좋겠네 빨리 늙은 애인이 허허 웃으며 주름진 이마나 긁적거리면 좋겠네 아직두 철부지 소녀 같다고 거짓 농이나 던져주면..

2010. 1. 23. 01:17

Extremely Loud and Incredibly Close(2005)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조너선 사프란 포어 (민음사, 2009년) 상세보기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_조너선 사프란 포어 / 송은주 / 민음사 독일 드레스덴 공습에서 살아남은 할아버지와 9.11 테러로 인해 아빠를 잃은 손자. 사랑하는 사람, 이름조차 불러보지 못한 뱃속의 아이를 잃은 할아버지 죽음의 경계에선 아빠의 마지막을 외면했던 아들. 언니의 연인을 원하는 할머니. 헤어진 아내를 잊지 못하는, 그래서 침대에 하루하루를 못으로 새기는 블랙할아버지. 개인이 어쩔 수 없는 것들. 그건 그저 그렇게 발생하고, 일어나고, 터진다. 그러한 사건은 역사가 되고 여러가지 이유들로 잊혀지거나 부각되거나 한다. 하나의 덩어리로 인지되는 드레스덴공습과 9.11테러는 각..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함민복 시인의 '가을'이라는 시입니다. 이 얘기속의 시인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 생각을 켜둔채로 잠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잠든 꿈 속에서 시인은 그리던 당신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당신 모습이 발갛게 켜진 가을 가로등 아래 비춰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 생각을 켜둔채로 잠의 축복속으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난 당신 생각이 켜져 있을때면 잠들지 못합니다. 시인처럼 당신 생각을 켜거나 끄지도 못합니다. 그저 당신 생각이 날 뿐입니다. 당신 생각은 내가 내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렇게 거기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당신때문에 올해 가을은 유난히 가을 같습니다. 그것 역시 내가 어떻게 ..

허삼관매혈기

허삼관 매혈기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위화 (푸른숲, 2007년) 상세보기 가난하던 시절 땅을 일구어 입에 풀칠이나 하던 때였다. 자꾸만 늘어나는 식솔들을 감당치 못하던 형과 대를 이을 자식이 없던 동생네가 있었다. 여러가지 이유들로 형네 조카 한명을 동생이 아들로 받아들였다. 그 때 이미 그 아이는 머리가 굵었다. 집을 떠나며 어쩌면 그 아이는 왜 하필 내가 가야해 하며 집 앞을 서성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날 이후 이제는 어머니가 돼 버린 숙모의 서릿발 선 엄포에 그 집 앞을 서성거릴 일은 없었을게다.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이 되었다. 그들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쉽사리 짐작되지 않는다. 하지만 맺은 연의 무게를 알 수 있는 몇가지 일들은 있다. 그 아들은 또 아들을 낳았다. 그러고는 곧 전쟁이 났다. ..

낯선 무언가.

언제부터인가(아마도 30대가 되어서 쯤이 아닐까) 마음 속에 이런 말들이 움텄다. 낯선 것에 거부감이랄까. 내가 아는 어느 분은 그러시더라. 내가 아는 사람은 좋은 사람, 내가 모르는 사람은 나쁜 사람. 인간관계가 힘이 된다는 뜻으로 얘기하셨겠지만, 더 이상 아는 사람을 만들 생각은 없는 듯 했다. 그렇게 나이 먹어감은 인생에 달관할 듯한 눈과 조금의 지혜를 주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한다. 나 역시도 그런 점은 부인하지 못할 듯. 아니 이제 서른쯤 먹은 녀석이 무슨 망발이냐 하겠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반동은 비단 나이가 들어서 생기는게 아니다. 그저 원래 내 안에, 어떤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우리 안에 있는 모습이니까.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수의 이야기속 푸르미의 아버..로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