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링크로스84번지
다른이의 편지글을 읽는 것은 마치 둘만의 사적인 공간에 나만 보이지 않게 들어가는 것 같다.
'새벽세시 바람이 불때'도 그렇고 '채링크로스 84번지' 또한 그렇다.
뉴욕의 가난한 작가 헬렌한프와 런던의 중고서점 점원 프랭크의 얘기는 수천km의 공간적 거리를 압축해서 우리에게 슬쩍 보여준다.
헬렌한프가 희귀서적을 구입하기위해 마크스 서점으로 보낸 첫편지.
"저는 가난한 작가입니다.절박하게 구하는 책들이 있는데 한 권당 5달러가 넘지 않는다면 보내 주시겠어요."
이국땅에서 온 편지가 얼마나 신기했을까.
그것도 책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프랭크는 답장을 한다. 처음엔 그저 일일 뿐이었다.
청구서를 포함한.
"윌리엄 해즐릿 산문집과 스티븐슨의 젊은이를 위하여를 보내드립니다. 기뻐하셨으면 좋겠네요. 다른 책도 구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편지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단순한 고객과 점원이 아닌 친구가 되어간다.
"저는 전 주인이 즐겨 읽던 대목이 이렇게 저절로 펼쳐지는 중고책이 참 좋아요. 해즐릿이 도착한 날 '나는 새 책 읽는 것이 싫다'는 구절이 펼쳐졌고, 저는 그 책을 소유했던 이름 모를 그이를 향해 '동지!'하고 외쳤답니다." 라며 말하는 개구쟁이 같은 헬렌은 전후 사정이 좋지 않은 영국친구에게 햄, 달걀 등 선물을 보낸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런 그녀에게 프랭크는 답례로 책을 선물하기도 하고, 영국으로 여행을 추천한다. 언제든, 얼마동안이든 이곳에 머무르라고.
그러나 결국 그녀는 가지 못한다. 아니 아마도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조금은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다. 편지로만 알던 모든 것들, 그래서 머리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던 것들이 실제화되는 것에.
편지속에서도 그런 마음을 조금씩이나마 엿볼 수 있다.
귀여운 헬렌의 핑계들.
편지를 엮어 "채링크로스 84번지"라는 책을 출판한 것은 프랭크를 향한 미안함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채링크로스가 84번지를 지나가게 되거든, 내 대신 입맞춤을 보내주겠어요?"
언젠가 그곳을 지나가게 되면, 그렇게 할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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