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by 장 지글러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굶주림 조장하는 배후세력이 있다
지구촌 10살 미만 어린이가 5초에 1명씩 굶어죽는데
120억명 먹고 남을 식량 왜 폐기처분하는가
식량 생산 폭증할수록 기아도 폭증하는 역설 뒤에
이윤추구 치닫는 자본의 냉혹함 도사리고 있다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9800원
“나는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힘을 갖고 있다. 그들은 우리를 이길 수는 있겠지만 사회의 진전을 범죄나 힘으로 멈추게 할 수는 없다. …머지않아 자유인들이 더 나은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지나갈 위대한 길이 다시 열릴 것이다. 칠레 만세! 칠레 국민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이다. 나는 나의 희생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불의 기억>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1973년 9월11일 이 마지막 라디오 연설 바로 뒤 총을 들고 저항하던 살바도르 아옌데는 사살당했다. 미국 지원하에 피노체트가 주도한 칠레 군부쿠데타가 사상 처음 선거로 집권한 사회주의 정권인 인민전선정부를 무너뜨린 것이다.

장 지글러(73)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는 이 사건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본다. 1970년 1월 좌파정당과 노동조합이 연합한 인민전선이 101개항의 행동강령을 발표했다. 그 제1항이 선거에서 승리하면 15살 이하 모든 어린이들에게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무상 배급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아이들 영양실조문제 해결이 칠레사회의 긴급과제였다. 그해 9월 선거에서 소아과 의사 출신 아옌데가 승리했다. 아옌데는 목축업자들과 독점계약을 맺고 생산에서 판매까지 우유산업을 독점한 채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던 스위스의 다국적기업 네슬레에 협력을 요청했다. 공짜가 아니라 제값 주고 사겠다는 데도 네슬레는 거부했다. 미국 때문이었다. 미국은 자국 기업들이 입을 손실과 중남미에 번질 ‘아옌데 도미노’를 겁냈을 것이다. 당시 닉슨 정권의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칠레에 대한 지원을 끊고 운수업계의 파업을 배후조종하면서 광산과 공장의 태업도 부채질했다. 사회주의정책으로 황금거위를 잃게 될까 전전긍긍한 네슬레도 이에 가담했다. 피노체트는 대학생, 성직자, 노조 간부, 지식인, 예술가, 노동자들을 숱하게 죽였고 개혁은 좌절했다. “아옌데 정권이 들어서기 전처럼 수만명의 아이들이 다시 영양실조와 배고픔에 시달리게 됐지.”

네슬레, 미국 눈치에 칠레 기아 방조

네슬레의 본고장 스위스 출신으로 제네바대학 교수, 연방의회 의원을 지냈으며 2000년부터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약하고 있는 사회학자 장 지글러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기아문제다.

2006년 10월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2005년도 기아 희생자 보고서를 보자. 10살 미만 아동이 5초에 1명씩 굶어죽어갔고 비타민A 부족으로 시력을 잃은 사람이 3분에 1명꼴이었다. 세계인구의 7분의 1인 8억5천만명, 많게는 65억 인구의 약 20%가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다. 기아 희생자는 2000년 이후 1200만명이나 더 늘었다. 아프리카는 전인구의 36%가 굶주림에 무방비상태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매일 10만명이 기아나 영양실조로 인한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동남아시아 인구의 18%, 아프리카는 35%, 중남미와 카리브해 지역은 약 14%가 굶주리고 있고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에 있는 사람의 4분의 3은 농촌지역 사람들이다. 우리와는 무관한가. 1995년부터 지금까지 200만명 이상의 북한 주민(대부분은 아이들)이 굶어죽었고 수백만명이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 15살 미만 북한 아동의 37%, 젖먹이는 엄마의 30%가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다.

그런데, 이렇게 굶주리는 것이 식량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지구 차원에서 보자면, 오로지 가격 유지와 이윤극대화를 위해 무더기로 폐기처분되고 할당량 이상의 생산자에겐 벌금을 물리며, 수백만 마리의 육우들을 한꺼번에 도살할 정도로 식량은 남아돌아가고 있다. 1984년에 FAO는 당시의 농업생산력으로도 지구는 120억의 인구에게, 한 사람당 하루 2400~2700칼로리의 먹을거리를 제공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생산력을 갖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뒤에도 생산력은 폭발적으로 늘었으나 굶주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생산력이 폭발적으로 증대될수록 기아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역설이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

폭력적 금융자본 식량자급 방해꾼


그렇다고 해서 지글러가 비참한 굶주림이 모두 권력과 부의 불평등, 제국주의 탓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건 아니다. 전쟁, 독재자와 군벌들의 학정, 부패, 자연재해, 사회적 갈등, 낙후한 시설과 기술과 자본, 종교·민족 분쟁 등 수많은 기아원인들을 구체적 사례를 들어 파헤친다. 부패하고 무능하고 야만적인 북한 지배그룹에 대한 지글러의 비판은 가차없다. 어린 아들 카림과의 대화형식으로 진행되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굶주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 지글러의 직접체험이 녹아 있는 생생한 사례들과 그런 그만이 알 수 있는 고급정보들로 차 있다. 아주 쉽고 가볍게 썼지만 그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이 지독한 모순, 식량이 남아도는데도 세계의 절반이 굶주려야 하는 비정한 현실의 최대 원인제공자로 지글러가 지목하는 것은 결국 폭력적인 금융자본이 주인행세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체제다. 오직 돈과 이윤이 모든 행위의 동기가 되고 자연재해나 쿠데타, 전쟁, 기아마저도 이윤의 재료로 활용하는 금융과두지배체제하의 자본주의가 이윤 극대화를 위해 벌이는 규제철폐, 민영화, 정부예산 삭감, 국가기능 축소, 사유재산 절대화, FTA, 자본시장 자유화 등 이른바 세계화라는 미명아래 밀어붙이고 있는 양육강식의 시장근본주의(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이야말로 그 원흉이다. ‘워싱턴 컨센서스’가 상징하는 강자독식의 신자유주의는 이윤을 위해 인간 및 지구의 미래와 관련된 세계 문제들에 눈감고 있을 뿐 아니라 문제를 새롭게 만들어내고 증폭시키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164위였던 아프리카 최빈국 부르키나파소를 4년도 되지 않아 식량자급국으로 변신시켰던 젊은 개혁자 토마스 상카라가 외국세력(프랑스)의 조종을 받은 자국 군부의 손에 살해당하고 나라가 다시 과거 굶주림을 대물림하게 된 것이 무엇 때문이겠는가. 유럽이 식민지배하기 전까지 아프리카는 그렇게 굶주리지 않았다.

다국적 자본의 과두지배체제에 저항하는 사회운동·비정부조직, 노조들의 세계적인 연대만이 희망이라고 지글러는 주장한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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