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레이먼드 카버 (문학동네,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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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면 왠지 알 것만 같다.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로 스윽 내리긋 듯 써내려가는 소설이란 어떤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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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뒤척이던 머릿속을 지나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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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아니 여전히 겨울이라는 걸 창문에 뽀얗게 낀 성에가 말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리고 상상하면 무슨 형태든 될 것 같은 그 무늬들 사이로 출근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의 행렬이 꼬리를 문다.
"어딜 저렇게들 가는 걸까요?"
내가 물었다.
"어디긴 어디겠어."
뜬금없는 내 물음에 박과장은 관심도 없는 듯 다음 층으로 잰 발걸음을 이었다.
그리고는 "먼저 올라가. 좀 쉬었다 갈께"
아무래도 12층을 한번에 오르기엔 무리겠지. 시니컬한 철학교수의 투정같은 행복론 강좌에 동원된 덕분에
평소보다 2시간이나 일찍 출근한 것도 무리.
하지만 우린 늘 무리하는 걸. 무리....무리....
"천천히 가죠"
가느다란 팬소음과 함께 눈을 뜬 모니터엔 어느새 몇가지 업무관련 메일들이 깜빡인다.
변함없다. 그 안엔 공간적으로 수백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원하는, 해야하고 해서 보낸 것들이
별 어색함없이 자리하고 있다. 이번 일은 그쪽 담당자에겐 꽤나 힘에 부쳤을 것이다. 나 그리고 우리도
그걸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일들 조차 0과 1로 변환된 데이터로 넘어와 이곳에 나타날 땐 결과일 뿐이다.
그게 난 여전히 익숙치 않다.
정량화되고 계량화된 것. 위험을 측정하고 그에 비례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 숫자로 형상을 만드는 것.
현재의 가치를 이연시켜 미래가치화 하는 것. 정말 이런 것들이 가능한 걸까.
결론은 가능하다. 별 것 없다. 다들 그렇게 믿으니까.
"뭐 하는거야?"
팀장의 주의에 허공에 뜬 두발을 내려 앉혔다.
"모형이 엉망이 됐잖아. 요즘 왜 그래?"
작업중이던 패널의 한 블록이 뒤바꼈다. 그 위엔 아침에 봤던 행렬들 위로 솟아올라 있던 빌딩들이 빼곡히
박혀있다. "다시하죠"
별일 아니다. 어차피 그 모양이 그 모양인데 뭘.
어렸을적 레고블럭도 이렇게 단순하게 생기진 않았었다.
천편일률적인 모양의 박스형 건물로 뒤덮인 도시는 어쩌면 효율이라는 이름의 시스템일지도 모르겠다.
도식화된 패스(path)를 따라서 밖에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드는.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사는 데에는 늘 희생이 따른다. 그 희생의 대가가 일종의 이자인 셈이다.
손에 닿지 않는 시간들을 우린 어깨너머로 흘겨 보며 고작 다음에 있는 똑같은 무늬의 다음 보도블럭을 밟는다.
누구는 그 발걸음이 쌓여 우릴 행복으로 이끈다고 하고, 어떤이는 행복이란 삶에 대한 태도라고도 한다.
한편에선 그런 개념어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지수(index)라는 것으로 그 정도를 측정한다.
"그 강사 말도 틀리기만 한 건 아니야, 그렇지 않아?"
아래층에서 올라온 동기녀석이 툭 던진다. 새벽부터 행복이란 실체가 없다는 둥 떠들어대던 그 철학자 얘기다.
모든 사고의 시작을 어원에서 부터 시작하는 건 언뜻 합리적으로 보인다. 행복이 우리말에는 그 유래가 없었고,happiness의 번역에 따른 조어라는 얘기.
"그런 어원에서 출발해 행복이 실체가 없다고까지 얘기하는 건 좀 비약이 심해..."
난 그렇게 얘기하면서도 한편으론 동조했다.
매번 타던 지하철 역이지만 반대편에서 바라본 모습은 왠지 낯설다.
똑같은 스크린도어가 열렸다 닫히고, 적당히 얼굴이 달아오른 취객들,각자의 손위에서 반짝이는 휴대폰들.
저 건너편은 늘 그 시간에 서 있던 저 곳은 내일이면 또 다시 날 이곳으로 이끌테지만
지금 서 있는 곳은 네게로 가는 길.
그래서 난 지금 네게 간다. 내 오늘을 내일로 그냥 그렇게 흘려보내지 않으려고. 
난 지금 행복해졌으면 하며 바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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