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보면 왠지 알 것만 같다.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로 스윽 내리긋 듯 써내려가는 소설이란 어떤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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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뒤척이던 머릿속을 지나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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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아니 여전히 겨울이라는 걸 창문에 뽀얗게 낀 성에가 말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리고 상상하면 무슨 형태든 될 것 같은 그 무늬들 사이로 출근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의 행렬이 꼬리를 문다.
"어딜 저렇게들 가는 걸까요?"
내가 물었다.
"어디긴 어디겠어."
뜬금없는 내 물음에 박과장은 관심도 없는 듯 다음 층으로 잰 발걸음을 이었다.
그리고는 "먼저 올라가. 좀 쉬었다 갈께"
아무래도 12층을 한번에 오르기엔 무리겠지. 시니컬한 철학교수의 투정같은 행복론 강좌에 동원된 덕분에
평소보다 2시간이나 일찍 출근한 것도 무리.
하지만 우린 늘 무리하는 걸. 무리....무리....
"천천히 가죠"
가느다란 팬소음과 함께 눈을 뜬 모니터엔 어느새 몇가지 업무관련 메일들이 깜빡인다.
변함없다. 그 안엔 공간적으로 수백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원하는, 해야하고 해서 보낸 것들이
별 어색함없이 자리하고 있다. 이번 일은 그쪽 담당자에겐 꽤나 힘에 부쳤을 것이다. 나 그리고 우리도
그걸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일들 조차 0과 1로 변환된 데이터로 넘어와 이곳에 나타날 땐 결과일 뿐이다.
그게 난 여전히 익숙치 않다.
정량화되고 계량화된 것. 위험을 측정하고 그에 비례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 숫자로 형상을 만드는 것.
현재의 가치를 이연시켜 미래가치화 하는 것. 정말 이런 것들이 가능한 걸까.
결론은 가능하다. 별 것 없다. 다들 그렇게 믿으니까.
"뭐 하는거야?"
팀장의 주의에 허공에 뜬 두발을 내려 앉혔다.
"모형이 엉망이 됐잖아. 요즘 왜 그래?"
작업중이던 패널의 한 블록이 뒤바꼈다. 그 위엔 아침에 봤던 행렬들 위로 솟아올라 있던 빌딩들이 빼곡히
박혀있다. "다시하죠"
별일 아니다. 어차피 그 모양이 그 모양인데 뭘.
어렸을적 레고블럭도 이렇게 단순하게 생기진 않았었다.
천편일률적인 모양의 박스형 건물로 뒤덮인 도시는 어쩌면 효율이라는 이름의 시스템일지도 모르겠다.
도식화된 패스(path)를 따라서 밖에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드는.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사는 데에는 늘 희생이 따른다. 그 희생의 대가가 일종의 이자인 셈이다.
손에 닿지 않는 시간들을 우린 어깨너머로 흘겨 보며 고작 다음에 있는 똑같은 무늬의 다음 보도블럭을 밟는다.
누구는 그 발걸음이 쌓여 우릴 행복으로 이끈다고 하고, 어떤이는 행복이란 삶에 대한 태도라고도 한다.
한편에선 그런 개념어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지수(index)라는 것으로 그 정도를 측정한다.
"그 강사 말도 틀리기만 한 건 아니야, 그렇지 않아?"
아래층에서 올라온 동기녀석이 툭 던진다. 새벽부터 행복이란 실체가 없다는 둥 떠들어대던 그 철학자 얘기다.
모든 사고의 시작을 어원에서 부터 시작하는 건 언뜻 합리적으로 보인다. 행복이 우리말에는 그 유래가 없었고,happiness의 번역에 따른 조어라는 얘기.
"그런 어원에서 출발해 행복이 실체가 없다고까지 얘기하는 건 좀 비약이 심해..."
난 그렇게 얘기하면서도 한편으론 동조했다.
매번 타던 지하철 역이지만 반대편에서 바라본 모습은 왠지 낯설다.
똑같은 스크린도어가 열렸다 닫히고, 적당히 얼굴이 달아오른 취객들,각자의 손위에서 반짝이는 휴대폰들.
저 건너편은 늘 그 시간에 서 있던 저 곳은 내일이면 또 다시 날 이곳으로 이끌테지만
지금 서 있는 곳은 네게로 가는 길.
그래서 난 지금 네게 간다. 내 오늘을 내일로 그냥 그렇게 흘려보내지 않으려고.
난 지금 행복해졌으면 하며 바랜다.
단편집 <너무나 많은 물이 집가까이에> <여자들에게 우리가 간다고 말해줘> <이웃사람> <목욕> 등 9편 레이먼드 카버 지음 영화 <숏컷> 로버트 알트먼 감독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에선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친구와 잠깐 드라이브를 하고, 언제나처럼 낚시 여행을 떠나고, 이웃에 사는 부부와 저녁을 먹을 뿐이다. 그런데도 파국은 천연덕스럽게 찾아온다. 작은 실수, 미세한 틈새를 노리고 있었다는 듯이 들이닥쳐 사막처럼 막막해진 인생을 뒤로하고 떠나버린다. 로버트 알트먼은 때로는 몇 시간에 불과한 드라마를 담고 있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들을 비행기 안에서 읽고 ‘레이먼드 카버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플레이어>의 성공 덕분에 알크먼은 아홉개의 단편을 골라내어 가늘지만 탄탄한 실로 꿰매었다.
<숏컷>에서 비교적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는 <너무나 많은 물이 집가까이에>에 바탕을 둔 것이다. 클레어는 남편 스튜어트와 세 친구가 산속 계곡으로 낚시 여행을 갔다가 알몸으로 물속에 버려진 젊은 여자의 시체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듣는다. 그들은 자동차가 있는 곳까지 돌아가려면 너무 멀고 여행 첫날이라는 핑계를 들어 시체를 곁에 둔 채 낚시를 한다. 그 물로 그릇을 씻고 커피를 끓인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무너져내린 클레어는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가장 감상적인 에피소드는 <목욕>. 스코티는 여덟 살이 되는 생일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털고 일어난 스코티는 그날 오후 혼수상태에 빠지고 깨어나지 못한 채 죽고 만다. 그 사이 주문받은 생일케이크를 완성한 제빵사는 집요하게 스코티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케이크를 찾아가라고 독촉한다. 알트먼은 아홉 단위로 이루어진 인물들을 서로의 에피소드에 스쳐가게 만들거나 서로 관계를 맺어주었다. 카버의 소설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긴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좀더 감정이 많고 좀더 설명이 많다. 카버처럼 망연하게 내버려두진 않는다. 그럼에도 황무지를 돌아보는 듯한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는 건 알트먼이 카버와는 다른 방식으로 카버의 정수에 다가갔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