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신축하드려요.


어머니는 참 무식하시다  
-박제영- 


어머니는 참 무식하시다.


초등학교도 다 채우지 못했으니 한글 쓰는 일조차 어눌하시다. 

아들이 시 쓴답시고 어쩌다 시를 보여드리면 당최 이게 몬 말인지 모르겠네 하신다. 

당연하다.
 

어머니는 참 억척이시다.

 

열 일곱 살, 쌀 두 가마에 민며느리로 팔려와서, 말이 며느리지 종살이 3년 하고서야 겨우 종년 신세는 면하셨지만, 시집도 가난하기는 매한가지요, 시어미 청상과부라 시집살이는 또 얼마나 매웠을까. 

그래저래 직업군인인 남편 따라 서울 와서 남의 집살이 시다살이 파출부살이 수십년 이골 붙여 자식 셋 대학 보내고 시집 장가 보냈으니, 환갑 넘어서도 저리 억척이시다. 

이번에 내 시집 나왔구만 하면, 이눔아 시가 밥인겨 돈인겨 니 처자식 제대로 먹여 살리고는 있는겨 하신다. 

당연하다.

 

무식하고 억척스런 어머니가 내 모국이다. 

그 무식한 말들, 억척스런 말들이 내 시의 모국어다. 

당연하다.

 

지금까지 써 온 수백편 시들을 전부 모아 밤새 체를 쳤다. 

바람같은 말들, 모래같은 말들, 다 빠져나가고 

오롯이 어, 머, 니,만 남았다. 

당연하다.

 
<생각과 느낌> 2005 가을호

+

이번주 화요일인가. 어머니의 생신을 챙겨드리지 못했다. 숫자에 약하기도 하거니와 매번 음력으로 지내시는 터라 이 무렵이겠지..하며 멍 때리고 있으면 놓치기 쉽상이다. 날짜가 가까워오면 동생이 미리 언질을 해주기도 하지만, 막상 당일날 알게되면 움직이기도 쉽지 않다.
주말이면 어차피 갈 테지만 못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평소에 부모님께 살갑게 굴고, 잘 해드린다면 그나마 괜찮겠지만, 나 같은 불효자에겐 생신과 어버이날은 그나마 조금이라도 만회할 수 있는 기회인데 그것마저 놓치버렸으니 마음이 그랬다.
좀 무리다...싶어도 저녁이라도 한끼 모실 생각으로 포항집으로 향했었다.
집으로 가는 길, 머 드시고 싶은거라도 없냐고 물었더니 그저 집에서 먹자신다. 객지 생활하며 사 먹는 밥 질릴텐데, 집에 올 때라도 집밥 먹으라며 한사코 외식을 마다하셨다.
들어가는 길에 꽃을 좋아하시기에 근처 꽃집에서 노란 장미 한다발을 샀다.
늘 그렇듯 어머니 앞에선 말주변이 없는 놈이어서, 그저 말없이 전해드렸더니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다.
할머니와 아버지께 보여 드리며 아들 칭찬에 여념이 없다. 한쪽에겐 손자이고, 또 한쪽에겐 같은 아들인데도 말이다.
지금이야 억척스러움과는 조금 멀어보이지만, 내 어머니 역시나 억척스럽다.
우리네 부모님이 다들 그러하듯, 달세방에서 시작해 아들 하나, 딸 둘 키우기도 벅찬데 손이 모자란 아버지 일까지 도우며 여기까지 오셨다.
하루가 멀다하고 모여들던 시누이들과 친척들이 예나 지금이나 늘 살갑게 지내는 것도, 사람 모이는데 늘 따르는 번거로움과 가사노동을 마다하지 않는 어머니의 덕이 크다.
그렇게 억척스런 어머니지만, 꽃을 좋아하는 모습은 아직도 소녀같다.
함께 시장이라도 같이 봐드리고, 종종 팔짱이라도 끼고 걸을때면
작은 얼굴에 주름살과 함께 퍼지는 미소는 여전히 소녀같다.
계수나무 꽃을 뜻하는 어여쁜 이름을 두고,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시는 그녀가 난 너무나 고맙다.
생신축하드려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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