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기업'

<테레사 수녀의 마음에 대기업 CEO의 머리로>

제3의 자본주의 <上> 비즈니스로 자선 베푸는 '사회적 기업' 확산

새로운 형태의 '제3의 자본주의'가 태동하고 있다.


이기적 인간 본성과 자유시장을 강조한 '고전적 자본주의', 정부 개입을 인정하고 복지를 중시하는 '수정 자본주의'에 이어, 새로 탄생한 제3의 자본주의는 이타적 동기를 추진 동력으로 한다. 자선과 비즈니스의 경계가 무너진 기업과 자선단체, 이들이 이끄는 변화의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시작은 '땅콩버터'였다. 1986년 아프리카 르완다에 자원봉사를 간 재클린 노보그라츠(Novogratz)는 배를 곯는 미혼모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마을에서 생산되는 땅콩으로 버터를 함께 만들어 팔아보기로 한다. 의외로 히트를 치자 이들은 아예 공장을 세웠고, 채용인원도 계속 늘어 결국 마을 미혼모들이 모두 땅콩버터로 생계를 꾸릴 수 있게 됐다.


이 작은 공장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 110억원(1200만달러) 상당을 굴리는 기업(펀드)으로 변신해 있다. 아프리카 남아시아에서 살충 모기장을 팔거나, 집 짓고 생수 만드는 사업 등도 겸한다.


"왜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냐"는 지적에 노보그라츠는 이렇게 답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그들이 구입할 수 있는 저렴한 물건을 생산하는 것. 이것이 적선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가난을 탈출하게 합니다."


사회공헌을 비즈니스로 하는 '사회적 기업(social venture)'이 확산되고 있다. 자선과 영리의 경계가 무너진, '제3의 자본주의'의 등장이다. 일반 기업의 목적이 이익 자체의 극대화라면, 사회적 기업들은 사회공헌을 통해 이익을 창출한다. 또 지원이 일회성인 자선사업과 달리, 사회적 기업은 적절한 이익을 냄으로써 '지속가능한' 사회공헌이 가능하게 하고 있다.


◆수익이 없으면 선행도 없다


'테레사 수녀의 따뜻한 마음과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치열한 경영전략으로.'


사회적 기업 '룸 투 리드(Room to Read)'를 운영 중인 존 우드(Wood)의 경영철학이다. 이 회사는 빈민층에게 서재 도서관을 만들어주는 사업을 한다. 창업자 우드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임원으로 일하다 6년 전 네팔에서 어린이들이 너덜너덜해 진 책 복사본을 돌려보는 것을 보고 업종을 바꿨다.


운영하는 기업은 달라졌지만, 경영전략은 똑같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올리는 것이다. 그는 "사회기업도 일반 기업처럼 수익을 내야 지속가능하다. 따라서 고객을 잃으면 청산돼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실제로 '룸 투 리드'의 성장세는 스타벅스보다 더 빠르다. 최근 6년 새 스타벅스가 500개의 새로운 점포를 열 동안 '룸 투 리드'는 1000개의 도서관을 지었다.


일반 기업이 투자 대비 수익률(ROI)을 따지듯, 사회적 기업의 목표는 '투자 대비 사회수익률(SROI, social return on investment)'의 극대화다. 창출된 일자리, 도움을 준 사람 수, 재투자된 수익 등의 수치가 투자에 비해 얼마나 좋았는지를 따진다는 얘기다.


◆세상을 바꾸려는 기업들


노벨 평화상을 받은 방글라데시의 빈민운동가 무하마드 유누스(67)가 31년 전 세운 '그라민뱅크'가 사회적 기업의 원조로 꼽힌다.


'제2의 유누스'는 세계 도처에서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안드레아와 배리 콜먼 부부가 설립한 '의약품 수송 회사(Riders for Health)'는 응급약을 아프리카 오지 마을에 배달하는 사업을 통해 사람들 목숨을 구해낸다. 매출은 370만파운드(2005년), 지난 15년간 목숨을 구해낸 사람은 1080만명이 넘는다. 콜먼은 "아프리카에 약을 기부하는 곳은 많지만, 정작 이것을 오지까지 수송하려는 사람은 없었다"며 "자선의 틈새를 발견해 실질적 도움을 주는 것이 우리 기업의 일"이라고 말했다.


수익성이 낮아 아무도 손대지 않던 풍토병 치료약도 사회기업의 힘으로 개발 공급되고 있다. 1998년, 미 식약국(FDA)에서 일하던 빅토리아 헤일 박사는 풍토병 치료약이 없어 죽어가는 빈민들을 보고 이들을 위한 제약회사(원 월드 헬스)를 차렸다. 덕분에 작년 말부터는 풍토병인 리슈만편모충증 치료제가 단돈 10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미국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대학과 일본 게이오대학은 6~7년 전부터 비즈니스스쿨 과정에 사회기업가 양성 강좌를 잇달아 개설했다. 전통적인 기업가뿐 아니라 사회적 기업가도 경영의 주류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일보)




<사업 효율성 따지는 '자선 기업가'>


제3의 자본주의 <下> 기부문화에도 '혁신' 바람


"5000만달러 기부할테니 10배로 불릴 때까지 못쓴다".


'백만장자의 심술'일까. 전설적인 석유 투자가, 분 피켄스(Pickens)는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 5000만달러(약 465억원)를 기부하면서 조건 하나를 붙였다. '기부한 돈을 10배로 불릴 때까지는 쓸 수 없다'는 것이다. 25년 안에 이 목표를 달성하면 불어난 돈을 다 쓸 수 있고, 실패하면 기부금을 오클라호마주에 넘기겠다는 조건이었다.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라는 것이 아니다. 혁신적인 사회 변혁 프로젝트를 진행해 사회적 주목을 끌고, 더 많은 기부금을 끌어모으라는 얘기다. 조건을 붙인 이유에 대해 그는 "자선단체들은 너무 안이하게 기부금을 써버린다"고 설명한다.


경영과 자선의 경계가 애매해진 '제3의 자본주의'의 시대, 경영 마인드로 무장한 새로운 형태의 기부자들이 탄생하고 있다. 피켄스처럼 자선사업에도 경영 개념을 도입, 전략을 짜고 효과를 검증하려는 기부자들을 가리켜 뉴욕타임스는 '자선 기업가(philanthropreneur)'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벤처 자선사업가(venture philanthropist)'라고도 불리는 이들 신흥 갑부들은 경영 전략을 자선 사업에 이식하고, 자본주의의 잣대를 내밀어 사업의 효율성을 측정하려 한다.


◆기부에 혁신을


빌 게이츠(Gates)나 이베이의 초대 CEO 제프 스콜(Skoll)은 자선사업에 새로운 물결을 불러온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카네기재단 같은 기존의 재단들이 보여왔던 전통적인 기부 방식을 거부한다. 성과를 검증하지 않는 기존 재단들은 직원 월급을 과도하게 주거나 특정 복지 분야만 편식하는 등 기부금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에게 기부는 일종의 '투자'다. 그는 자신과 부인의 이름을 건 재단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사회적 효율성(SROI)이 뛰어난 단체 사회기업을 골라 기부금을 투자한다. 게이츠는 "기업이 시장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빈곤층의 필요를 충족시켜야, 세상의 불평등을 빨리 줄일 수 있고 지속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자선 기업가들은 자선을 할 때도 효율성을 놓고 경쟁한다. 아메리카온라인(AOL) 설립자인 스티브 케이스(Case)가 아프리카 한 마을의 오염된 식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건비 1인당 6달러씩을 투자해, 펌프질을 할 때마다 근처 호수에서 물이 공급되는 장치를 설치했다. 그러자 이번엔 영국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이 나타나 이 마을에 나무를 심어 오염된 식수를 해결하되, 인건비도 1인당 4달러로 낮춰버렸다. 브랜슨 회장이 더 빠르고 더 싸게 자선하는 법을 한 수 가르친 셈이었다.


구글의 두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구글닷오알지(Google.org)'라는 재단을 세워 자선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에탄올로 움직이는 하이브리드 자동차 엔진을 개발하고, 이런 자동차 소유자에게 세금 혜택을 주는 법안 통과를 위해 로비스트까지 고용했다.


사모펀드 KKR의 창업자 조지 로버츠(Roberts)는 자선기금관리회사를 세워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등 기부금이 투명하게 쓰이도록 관리하고 있다.


◆효율성을 경쟁하는 자선단체들


자선단체들도 기부자의 자비심에만 호소하지 않는다. 비즈니스 전략을 도입하고 조직 구조조정에 나서는가 하면, 기업이 수익률을 따지듯 사회적 효율성을 높이려는 프로젝트를 단행하고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자선단체 '제네바 글로벌(Geneva Global)' 직원들의 대화를 엿듣는다면 이들이 펀드 매니저라고 오해할지 모른다. '투자 수익률'이며 '차입금액', '규모의 경제'라는 단어가 튀어나오고, 마치 입찰을 하듯이 자기 아이디어가 채택되도록 무섭게 경쟁한다.


이 단체는 전 세계 600여개 NPO(비영리단체)나 사회적 기업을 기부자와 연결해 주는, 일종의 '중간 유통업체' 역할을 한다. 매달 발행하는 잡지에 각 기업이 활동하는 지역과 도움 받는 사람들의 연령, 성별 등을 실어, 기부자들이 쇼핑하듯 자선단체를 고를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한다.


또 기부자들이 내는 1달러가 몇 명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지, 사회적 파급효과는 어떤지 정확한 숫자로 집계해 내기도 한다. 그래서 붙은 단체의 별명이 '자선단체의 골드만삭스'다.


제네바 글로벌의 대표 스티브 벡(Beck)은 "자선단체들도 사회 문제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풀 수 있느냐를 두고 치열한 효율성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선진국의 성공모델들>


선진국의 성공적인 사회적 기업들은 성장과정에서 일반 영리기업들과 연계하거나 지원을 받은 경우가 많다.


미국 보잉사는 1966년 직원의 85%가 전과자나 약물 중독자인 사회적 기업 파이어니어 인더스트리즈와 장기 계약을 맺었다. 보잉이 부품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를 공급하고, 작업 시간 만큼 인건비를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보잉은 부품 공급 비용을 낮출 수 있었고, 파이어니어 인더스트리즈는 세계적 기업에 납품하면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다. 보잉은 경영 노하우도 자문해주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사회적 기업 쥬마 벤처스는 저소득 청소년들을 고용해 직업훈련과 경력 개발의 기회를 주는 곳으로 미국 아이스크림 판매 1위 기업인 벤앤제리의 지원 속에서 성장했다. 벤앤제리는 판매 교육을 주관하는 것은 물론 가맹비를 받지 않고 프랜차이즈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매장 입지 선정, 시장조사 같은 경영 노하우도 전수했다. 그 지원 덕택에 12년간 청소년 2000여명이 일자리를 얻었다. 벤앤제리는 쥬마 벤처스 외에 10여개 사회적 기업에 대해서도 가맹비를 받지 않고 판매 교육을 하고 있다.


뉴욕의 퍼스콜라스는 빈곤지역 학교와 가정에 저렴한 가격으로 컴퓨터를 보급하면서 소외계층에게 직업훈련을 시키는 사회적 기업이다. 이 기업은 기업들로부터 기증받은 구형 컴퓨터를 깨끗하게 정비하고 수리해서 공급한다. JP 모건 등 많은 대기업들이 낡은 컴퓨터뿐 아니라 최신 모델 컴퓨터도 기부하고 있다.


프랑스의 앙비는 가전제품을 분리수거해 수리한 뒤, 별도 매장에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장기 실업자에 대해서는 직업 훈련을 거쳐 일자리를 제공해주고, 저소득층에게는 가전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자원을 재활용하는 만큼 환경 보호에도 기여한다. 앙비의 성장과정에서는 프랑스 굴지의 가전제품 유통업체인 다티의 역할이 컸다. 다티는 소비자에게 상품을 판매하면서 수거한 중고 가전제품을 앙비에 무상으로 공급했다. 앙비가 분해한 부품 일부를 수출할 수 있도록 판로를 알선해줬고, 직업훈련기관과 함께 체계적인 교육훈련 프로그램도 제공했다.


영국에서 잡지를 발행하는 빅 이슈는 노숙자들을 잡지 판매원으로 고용하고 있다. 이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재취업을 위한 정보기술(IT) 교육을 실시한다. 1991년 설립한 이래 5300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잡지 판매와 광고로 수익을 늘려가면서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일정한 지원을 받고 있다. 운영비 중 기업으로부터 지원받는 몫이 21%를 차지한다.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비영리 재단이나 사회사업에 헌신적인 종교기관의 지원이 큰 힘이 된 경우도 적지 않다.


샌파란시스코의 루비콘 프로그램은 장애인과 장기실직자, 노숙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직업 훈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처음에는 종묘소매업으로 시작했지만 수익을 내지 못하자 조경사업으로 바꾸었다. 여기서 수익모델을 찾은 루비콘은 베이커리 사업에 뛰어들어 시 전역에 매장을 갖출 정도로 성장했다.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로버츠 엔터프라이즈 개발 재단으로부터 직업훈련 비용을 지원받은 게 큰 도움이 됐다.


밀워키의 빈민가에 자립잡은 사회적 기업 홈보이즈 인터랙티브는 1996년 예수회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설립됐다. 비행 청소년들에게 컴퓨터 프로그래밍 교육을 시켜 자립을 돕는 곳이다. 아모코 등 대기업에 웹사이트 개발서비스를 판매하는 등 자체 수익모델도 확보했다. 2002년부터 웹사이트 개발 수입이 100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안정 궤도에 올라섰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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