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누우며


...개항이래 이 나라에 건설된 주택과 빌딩과 마을과 도시들은 모두 자연과 인간을 배반했고, 전통적 가치의 고귀함을 굴착기로 퍼다 버렸으며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의 편이 아닌 공간에 강제 수용되어 있다는 탄식이 그 무성한 논의의 요점인 듯 하다. 비바람 피할 아파트 한 칸을 겨우 마련하고나서, 한평생의 월급을 쪼개서 은행 빚과 이자를 갚아야 하는 사람이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속에 찬바람이 분다. 마소처럼, 톱니처럼 일해서 겨우 살아가는 앙상한 생애가 이토록 밋밋하고 볼품없는 공간속에서 흘럿간다. 그리고 거기에 갇힌 사람의 마음도 결국 빛깔과 습기를 잃어버려서 얇고 납작해 지는 것이리라. 아파트에는 지붕이 없다. 남의 방바닥이 나의 천장이고 나의 방바닥이 남의 천장이다....
김훈의 자전거여행 중에서

문득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와 사각형의 방안에 몸을 누이고는 책을 펴니 왠지 서글프다. 애면글면 살아가는 삶이 고작 몇평이라는 콘크리트 더미로 평가받는 것도 그러하다.
어차피 각자의 선택에 달린 문제가 아니냐고 하면 선택이란 몇개의 가짓수가 있을때의 얘기라 답하겠다. 우리 스스로를 조금씩 편의성과 효율성이라는 구속복에 맞춰온 덕분에 더이상의 대안은 들어설 틈도 없다.
뜰이 있는 주택의 아늑한 풍경은 외려 아득한 부의 산물이 되었고 가지지 못한 이들의 삭막한 콘크리트집은 그나마 가까운 꿈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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