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
범상치 않은 두뇌의 소유자 이시가미에게 생활을 위해 지속해야하는 고등학교 교사생활은 이미 죽음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내거나, 일상을 가볍게 여겼다고 볼 순 없다. 여러 정황으로 볼때, 학교에선 '수학'이라는 딱히 환영받지 못하는 수업을 제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정신만큼 육체적인 강함에도 꾸준한 노력을 보인다. 그렇지만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이시가미를 알게되면서, 얼마전 읽었던 바하문트님의 포스트중 burden of being a genius가 떠올랐다.
자살을 얘기하는 사람은 삶에 대한 엄청난 통찰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얼치기에 불과하다. 삶과 죽음은, 나와 너처럼, 천당과 지옥처럼, 하나가 없으면 또 하나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삶과 죽음은 뫼비우스의 띠마냥 엮여 맺어져 있다. 대개의 사람들, 인구의 99.9999%는 삶과 죽음 사이에 완전한 테두리가 있다. 하지만 아주 소수의 선각자들에게 있어서 삶과 죽음의 차이란 무의미하다. 매일 죽는다, 라는 표현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바하문트님 포스팅 중에서.
Burden of being a genius
David Foster Wallace
그 죽어있던 이시가미를 현실에 머물게 해 준 사람이 이웃집의 야스코. 그런 그녀가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 이시가미는 완전범죄를 꾸민다.
애써 둘러대지도, 쓸데없이 장황한 묘사를 하지도 않으며 소설은 진행된다. 그런 흐름의 속도가 자연스레 책 속에 몰입하게 한다. 주어진 퍼즐들만으로 종반부의 반전을 알아채기는 나같은 범인(凡人)에겐 무리다. '아니 그게 왜?'하고 처음부터 되새겨볼 뿐. 그러고보니 나도 참 어지간히 둔하다.
이야기의 중간쯤에선 이시가미를 오해하기도 했다. 이 녀석 그저 그런 오타쿠일 뿐인건가?. '헌신'은 무슨 헌신..이런 걸 헌신이라 할 수 있나? 결국 스스로 자멸해버리는 그런 이야기? ...... 이런 오해들을 했다. 그런 결말이 아니라면, 책속의 형사들이 주어진 사건의 틀을 깨기는 어렵다. 밖에서 사건을 볼 수 없을테니, 뻔하게 끝나지 않을까 하는 설레발을 쳤다.
하지만 이시가미의 헌신은 말 그대로 獻身이었고, 그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몸과 마음을 다 바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천재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며, 풀어도 풀리지 않는, 알아도 어쩔 수 없는 알리바이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수용 가능한 정보를 분석하고, 그에 대한 최선과 차선, 그리고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결과물이었다.
다만 그가 놓친 것은 사람의 선함, 아니 나약함 또는 그 어떤 것.
+
내가 이시가미였다면 (물론 난 수학 천재는 아니지만 CSI와 각종 서스펜스 스릴러를 섭렵한 잡지식을 바탕으로) '야스코'를 맘에 두지 않을꺼다.ㅡ,.ㅡz 이러면 일단 소설이 안된다는 거.
어쩔 수 없이 '야스코'를 선택하게 된다면....정당방위를 주장하여 '무죄'선고 받는 쪽을 고려하지 않을까. 그래서 법정스릴러물로 'Primal Fear'같은 반전을 만드는거지.ㅋㅋ
어쨌든 오랜만에 읽은 추리소설이어서 그런지 새롭고, 진도나가는게 지지부진한 경제학 서적과는 달리 단숨에 읽어버렸다. 예전 홈즈시리즈나 소년탐정 김전일에 빠져서 일드까지 찾아보던 기억이 새록새록..
'책+영화+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I'm Yours (0) | 2009.07.06 |
---|---|
서른살의 심리학(냉무) (1) | 2009.03.19 |
lovely gondry (3) | 2009.03.10 |
탐욕의 시대+촘스키 (1) | 2009.03.08 |
워낭소리_삶이라는 실체의 힘 (3) | 2009.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