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시대+촘스키

어느 혁명가의 辯


특정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다른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을 기아에 허덕이게 만들 때, 자유란 한낱 허울뿐인 유령에 불과하다. 부자가 독점을 통해서 동시대인들의 생사여탈권을 장악할 때, 평등이란 한낱 허울 좋은 유령에 불과하다. 혁명의 반동 세력이 나날이 곡식의 가격을 쥐고 흔들어 시민들의 4분의 3이 눈물 없이는 식량을 조달할 수 없을 때 공화국은 한낱 유령에 불과하다.


상거래를 장악한 귀족들은 땅을 가진 귀족이나 성직에 종사하는 귀족들보다 훨씬 악랄해서, 시민 개개인의 재산이나 공화국의 보물들을 가지고 야비한 장난을 일삼는다. 우리는 그들이 벌이는 그와 같은 전횡을 무어라 불러야 하는지 정확한 용어를 알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날이 갈수록 상품 가격은 끔찍하게 상승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시민 대표들이여, 그러니 이기주의자들이 사회에서 가장 근면한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벌이는 죽기 살기식의 투쟁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되었다.

-1972년 여름 파리에서자크 루


자유란 먹고살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나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루이 드 생쥐스트, Pp24

 

지금의 모습은?

 

거대 다국적 자본주의 민간 기업들, 책에서 저자는 코스모크라트, 세계화지상주의자라고 칭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당연히 있어왔다고 여겼던 결핍을 세계화지상주의자들은 스스로 생산한다. 이익을 짜내기 위해 희귀성을 만들어 낸다.

오늘날 인류가 처한 비참함은 어느 시대와 비교해도 유래가 없다.

5세 미만의 어린아이들 중에서 1천만 명 이상이 해마다 영양 결핍이나 각종 전염병, 오염된 식수,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이들 중에서 50퍼센트는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6개국에서 발생한다. 희생자들의 90퍼센트가 남반구 국가들의 42퍼센트에 집중되어 있다. 이 아이들의 생명은 재화의 객관적인 결핍이 아니라, 재화의 공평하지 못한 분배[각주:1], 다시 말해 인위적인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다. Pp35



전 세계의 예산구조 pp48


미국 그리고 강대국의 위선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큰 석유 저장고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곳에 매장된 석유의 양은 대략 1,120억 배럴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된다. 1배럴은 159리터에 해당된다.이라크의 키르쿠크에서 바소라에 이르는 지역의 매장량만 보더라도 18조 리터에 달한다.

그런데 석유의 양보다 사실 이라크 유전의 지질학적인 입지가 어쩌면 더욱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라크의 유전은 북부나 남부를 구별할 것도 없이 모두 지표면에서 아주 가까운 층에 위치하고 있다. 고작 몇미터만 파내려가면 검은금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텍사스 유의 배럴당 생산단가가 10달러라고 할 때, 북해산 석유의 생산 단가는 15달러인 데 비해서, 이라크 유의 생산 단가는 1달러도 채 안 된다. Pp52

 

결국 이라크는 놓을래야 놓을 수 없는 손안의 검은 유전 일 뿐, 세계평화, 누군가의 인권, 대량살상무기 기타등등이랑은 상관없다.

부채는 또 어떤가? 여기엔 좀 더 지저분한 관료(자국민을 착취하기에)들이 끼어든다.

책에서 콤프라도르라고 칭하는 새로운 다국적기업, 봉건적 제후들에게 매수된 자들은 자국의 이익을 팔아 그들의 뱃속을 채운다.

피지배적인 상황에 놓인 나라의 지배계층에게 국가의 부채는 많은 이권을 보장한다. ……. 거액의 부채를 끌어와서 건설한 사회기반 시설의 가장 큰 수혜자가 바로 이들이다. 국가가 외채를 들여와서 제일 먼저 건설하는 것은 도로이며, 그 덕에 이들은 자신들의 거대 영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pp85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예를 들어 100억달러의 외채가 국내로 유입될 때, 마치 당연한 듯이 사라지는 각종 수수료들은 누구의 손으로 사라지고, 사회기반시설에 투자되는 결정권을 가진 지배계층에게 리베이트 명목으로 사라지는 액수는 또 얼마나 될까?

 

에릭 투생이 처음으로 사용한 추악한 부채라는 단어는 르완다의 경우에서 그 끔찍함에 몸서리치게 된다.




모진 집단학살에서 살아남은 대가가 외국은행에게 빚을 갚기 위해 등골이 휘도록 일하는 것이다 pp109

 

건전한 이성으로 판단할 때 당연히 부조리한 것을 부조리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이유?

 

언론, 매체, 광고, 홍보라는 것들[각주:2]

-폴 마라는 벌써 2세기나 앞서서 오늘날 광고나 PR계의 말재주꾼들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를 상세하게 묘사했다. 여론이라는 것은 무지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무지는 극단적인 독재가 싹틀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다. 사물에 대해서 건전하게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에만 집착할 뿐이다. 로마인들도 카이사르에게 그가 왕이라는 지위를 가졌을

때에는 거부했던 권한을 황제라고 이름을 바꾸니 아무 저항 없이 내어주지 않았던가? 말에 현혹되는 사람들은 아무리 파렴치한 사물이라고 할지라도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만 되어 있다면 아무런 거부감을 느끼지 못한다. 반대로 칭송받아 마땅할 사물들이 아름답지 못한 말로 묘사되면 그것을 혐오한다. 그러므로 행정부의 일상적인 업무란 말의 뜻을 왜곡함으로써 민중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Pp 254


우리는 어떻게 ?


점차 고착화되어 간다. 이건 하나의 매트릭스같다. 너무 잦은 매체의 노출(핵심은 피해간)로 무뎌지고, 기아와 착취는 사라져야 할 폐해가 아니라, 시스템의 존속을 위한 하층구조인 것처럼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린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할까?

 

프랑스 혁명[각주:3]의 의미에 대해 칸트가 남긴 글에서 우린 우리의 방향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다. 그 같은 현상은 세계 역사 가운데에서 절대 망각될 수 없다. 이제까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 즉 인간의 본성 속에 이미 도덕적인 진보의 가능성 배태되어 있음을 발견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비록 추구한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으나..처음으로 자유를 추구했다는 사실이 지니는 가치까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은, 다른 민족들이 다른 상황에서라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음을 망각하거나, 다시금 이와 같은 일을 시작하고 싶은 끓어오르는 흥분감을 억누르기엔 너무도 엄청나고 인류의 복지와 너무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세계 모든 분야에 너무도 큰 영향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칸트의 이러한 글은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소수, 즉 대체로 별다른 의식 없이 사는 백인들의 편의를 위해 언제까지고 대다수가 가난과 절망, 착취, 기아 속에서 신음해야 하는 세상”…지금의 세상이 1972년 여름 프랑스의 상황과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타인이며 동시에 타인은 나다. 타인에게 가하는 비인간적인 행동은 내 안에 깃들어 있는 인간성을 말살시킨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다시 시작하자..라고.

비록 그 투쟁의 결과가 어떨 지는 모르지만, 파블로 네루다의 말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그들은 꽃이란 꽃은 모조리 꺽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결코 봄의 주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1. 이런 거대 민간기업들은 어떻게 국가로부터 자유로워져 이 지구를 대상으로 착취하고 있을까? 그 시작점에는 아마도 냉전체제의 붕괴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Pp 201 “ 1999년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10년째 되는 해이고, 당연히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실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반향에 대해서는 상세히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이 사건이 제3세계 국가에게 재앙과 다름없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제3세계의 반공주의자들까지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서방세계가 3세계의 이익을 더 이상 고려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제3세계를 더욱 가혹하게 다룰 것이란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부자나라와 강대국이 관련되지 않은 문제는 모두의 관심 밖입니다.” [본문으로]
  2. 이렇게 지배계급이 언론을 통해 권력을 강화시키는 구조에 대해서 노엄 촘스키 역시 문제를 제기해 왔다.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Pp 67 1940-50년대 노동세력에 대한 탄압. 실제 미국은 폭력으로 유린된 노동운동을 경험한 나라. 이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기업은 노동자에게 전투적인 노동운동자는 ‘공산주의자’라는 메시지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 언론, 성직자,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스포츠 모든 채널이 여기에 동원되었다. 이러한 노력은 성공을 거두었다. 촘스키는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유행하는 소비재와 같은 천박한 것에 집착하는 인생관을 노동자들에게 심어주면서 장시간 노동을 기꺼이 수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연민, 타인과의 연대 등과 같은 위험한 생각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요컨대 인간의 가치를 완전히 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한다. [본문으로]
  3.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Pp 164 혁명..그 단어는 때로 우리에게 과격한 표현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건 우리가 가진 하나의 권리, 또한 유산이다. 노엄촘스키는 혁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국적 기업의 횡포를 무너뜨리겠다는 실천적인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의지를 상실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더욱 키워나가야 합니다. 19세기의 정신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19세기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임금 노동은 노예제의 다른 형태일 뿐이라 생각했습니다. 19세기 중반에 미국의 공화당도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국민에게서 이런 생각을 떨쳐내려고 대대적인 선전 공작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되살아난다면, 국민이 사회와 경제를 다시 민주화시키고 인간을 소중히 생각지 않는 힘에 맞서 싸우기 위해 힘을 결집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국민운동이 확대되고 권력자들이 폭력으로 억누르려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때 우리 사회는 혁명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혁명세력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얘기한다.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앞장서서 기존질서를 뒤바꾸려 한다면 그 대가를 호되게 치러야 할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대가를 피하는 방법은 “….유일한 길은 조직화 되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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