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들의 보금자리 - 호텔 아프리카 (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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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보금자리, 아프리카.
예쁜 아델 할머니와 노래하는 트란 할아버지의 작은 카페, 아프리카.
- Vol.20 트란 中 -
그래, 여름이어야 해.
일 년 내내 여름인 그런 한적한 시골에 지을 거야.
밤엔 수를 헤아리기도 힘들만큼 많은 별이 뜨고 바람은 아주 달콤하겠지.
집 앞에는 커다란 나무를 심을 거야.
그리고 그 나무에 흔들의자를 매달아 별이 뜨는 밤이면 우리들의 아가를 무릎에 앉히고
집시의 자장가를 불러주는 거야.
난 아들을 낳을 거야.
그 귀여운 입으로 하품을 하면
내 가슴에 안고 나의 심장 소리를 듣게 하겠어.
내가 얼마나 그 아이를 사랑하는지내 가슴의 노래 소리를 들려줄 테야.
밤이면 나무 위에 올라가 별을 보고강가에서 목욕도 하는 거야.
그리고 아이가 자라면 함께 낚시도 가고 술도 마시며
지금껏 살아온 날과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거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말이야.
난 그 아이를 미치도록 사랑하게 될 거야.
지금 당신을 사랑하듯이.
아델, 그곳은 말이야.
사랑 때문에 가슴이 벅찬 그런 사람들만 오는 그런 곳이야.
흑인이거나 백인이거나
또는 잘 살거나 못 살거나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그저, 그저 말이야.
따뜻한 가슴만이 중요한 그런 곳이라구.
그곳에서 우리 사는 거야.
우리의 아이와 함께.
트란, 오늘도 똑같은 꿈을 꿨어요.
그곳은 일 년 내내 부드러운 서풍이 얼굴을 간지럽히는 그런 곳이에요.
오렌지 소다수 향기와 건조한 흙냄새가 이는 작은 마을.
끝없이 이어지는 지평선과 눈이 시릴만큼 파란 하늘.
그리고,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도 힘든 줄 모르고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유쾌하게 일을 하고 있는 당신이 있어요.
바람이 잘 드는 창가에는 시원한 레모네이드와
낮게 틀어놓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있죠.
적당히 차가워진 레모네이드를 들고 나가면
당신은 기다렸다는 듯이 손등으로 땀을 닦으며 아주 달고 맛있게 마시죠.
그리고는 다음 순간, 아래로 향해 활짝 미소 짓는 거예요.
엘비스예요.
매우 순수한 눈망울을 뽐내고는 있지만
사실은 맹랑하기 그지 없는 깜찍한 녀석, 엘비스.
낙심하고 절망하고 상처받은 사람들, 그러나 결국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저마다의 사연을 꺼내놓고 휴식과 위안을 얻어가는 그곳, 호텔 아프리카. 도로변도 아닌 인적 드문 사막 한가운데에 거짓말처럼 자리 잡고 있다는 것에서부터 비현실의 기미를 드러내는 이곳에서는 인종도, 계급도,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편견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과 사람이 오가며 소중한 무엇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환상과도 같은 자기치유의 공간일 뿐이다.
그곳에서는 내 사연이 더 절절하다고,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떼를 쓰지 않는다.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절절한 사연이라고 해봤자 호텔 아프리카의 안주인 아델라이드의 과거 정도뿐, 이곳에 모여드는 인물들이 풀어내는 저마다의 사연들은 담담하게 읊조리는 노랫가락처럼 그저 흘러간다.
밤무대의 검은 엘비스 트란과 시골에서 갓상경한 당찬 숙녀 아델라이드. 짧은 사랑 후 홀로 남은 아델라이드가 고향 유타에서 시작한 호텔 아프리카. 그곳을 지키는 아델라이드와 엘비스 모자, 할머니, 그리고 묘한 인디언 청년 지요. 머물렀다 이내 떠나는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 박희정 특유의 반짝이는 미형의 그림체와 수필을 연상케 하는 다분히 문학적인 감성은 이들의 과거와 현재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내며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결국에는 사랑과 화해라는 대단히 뻔한 결론을 맺고는 있지만, 완결이 된지 십 년이 지나도록 많은 이들의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는 여운을 남기는 것은 바로 그 진부할 정도로 정직하고 선량한 인물과 사연들 때문 아닐까.
햇빛과 먼지라는 이질적인 요소가 함께 떠다니는 어느 여름 오후의 행복한 웃음, 그리고 시원한 레모네이드. 햇살 내리쪼이는 창가에서의 달콤한 낮잠. 누구나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소박한 꿈 또는 환상. 그것이 존재하는 바로 그곳, 호텔 아프리카.
대지의 아가 미노가 속삭인다.
꿈처럼 달콤하게
꽃잎처럼 부드럽게
안녕이라고
태양도 대지도 아가도 숨을 죽이고
아기여우 우마도 숲으로 사라져
이제는 별들만 총총
그러니 나의 아가
이슬이 대지를 적실 때까지
잘 자거라 내 아가
잘 자거라
잘 자거라
- 트란이 어릴적 고아원 수녀님께 들었다던 집시의 자장가.
그 말고도 등장인물 중 꽤 다수가 이 자장가를 알고 있었다!-
어릴 적에는 신비한 인디언 청년 지요가 마냥 멋있어 보였다. 인디언이라는 출신에 걸맞게 다분히 영적인 면모를 지닌 그는 사람이 보고파 하고 간절히 바라는 것을 실제처럼 보여주기도 하고, 미지의 존재와 영혼의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고, 때로는 마음을 읽기도 하는 그.
사실 생각을 조금만 달리 하면 매우 섬뜩하기 그지 없지만, 그는 너무나도 고요하고 맑은 느낌이다.(사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인디언 자체에 대한 이분법적인 고정관념의 혐의를 지울 순 없지만, 여기에서까지 그런 것들을 논하고 싶지는 않고!-_-;;) 그는 만난지 몇 시간만에 아델라이드에게 청혼하는 저돌성까지 보이지만, 결코 강요하지 않고 억지부리지도 않는다. 그는 호텔 아프리카라는 치유의 공간에 딱 맞는 환상의 캐릭터였다!
그러나 나이들어 다시 봤더니, 물론 지요는 여전히 멋있는 것은 변함 없지만, 그 때는 참 준수한 청년이구나, 정도에서 그친 다 자란 엘비스가 그렇게 마음을 당길 수가 없는 거다.
이 녀석, 정말 이쁘다. 호텔 아프리카에서 보낸 유년의 영향인지, 그는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아는 꽤나 센스있는 녀석으로 성장했다. 그는 그 자체로 이미 호텔 아프리카다. 덕분에 유년기의 호텔 아프리카와 청년기의 뉴욕이 수시로 오가는 스토리에도 전혀 혼란스럽지 않았다. 이미 그는 그 자신의 아우라만으로 뉴욕 일부 지역을 그들만의 호텔 아프리카로 만들고 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물론 유타의 그곳과 비교했을 때는 조금은 도시적이고 역동적인, 청춘의 냄새가 스물스물 풍겨오긴 하지만 말이다.
누구나 소중한 그 누군가를 기다리며 사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만약에 소중한 그들이 지치고 피곤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면,
어떤 장황한 위로의 말도 필요 없을 것이다.
"어서 와요."
이 한 마디.
"돌아와서 기뻐요. 정말로."
이 한 마디로도 그들의 가슴은 따뜻해질테니...
<Vol.25 끝의 시작 - New York Story & Hotel Africa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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