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받는 종업원지주제(ESOP)

주목받는 종업원지주제(ESOP) 종업원 기업에 거품은 없다

신경제 붕괴로 새롭게 주목받는 미국 종업원지주제 기업의 어제와 오늘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최근호는 섬뜩한 문구를 표지에 내걸고 전세계에 깔렸다. ꡐ거품 폭발ꡑ(Boom Burst). 요즘 미국경제가 우려스런 수준을 넘어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이다. 판촉효과를 노려서 다소 과장된 표현을 쓰기는 했겠지만, 어쨌든 미국경제에 대한 자존심을 좀처럼 꺾지 않았던 이 잡지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을 다룬 셈이다. 이렇게 미국경제의 전도사 구실을 해온 매체가 경제에 대한 섬뜩한 경고의 목소리를 냈는데도 미국 현지에서는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곳이 있다.

종업원 소유․경영체제로 성공한 SAIC

로스앤젤레스에서 미국 서남부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타고 샌디에이고로 들어서면 초입에서 마치 대학캠퍼스와 같은 기업단지를 만난다. 실리콘밸리의 중심 새너제이 못지않은 미국 신경제의 산실이다. 이 단지 안에 이동통신의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 원천보유기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퀄컴사와 나란히 붙어 있는 SAIC(Science Application International Corporration).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의 회사이지만 사실 미국 내에서는 퀄컴사보다 더 유명하고 규모도 훨씬 큰 회사이다. 미국 <포춘>이 선정하는 500대 기업 안에 296번째로 들어가고, 아무런 생산설비 없이 4만1천명 종업원들이 기술지식만 팔아 한해 59억달러(약 7조원)의 매출을 달성한 기업이다. 그보다는 미국 첨단기술기업 가운데 가장 큰 종업원소유기업으로 더 유명하다. 그리고 미국 전체 기업들 중 가장 모범적이고 성공적인 종업원 소유․경영체제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는 기업이다.

SAIC는 현재 최고경영자로 있는 로버트 바이스터 회장(핵물리학 박사)이 1969년 그의 동료 과학자 4명과 함께 설립한 회사이다. 초기에는 미국 정부에서 발주하는 국방, 에너지, 환경분야 연구용역 사업으로 기반을 다져 지금은 공공기관과 일반기업들을 상대로 컴퓨터와 정보통신에 관련된 갖가지 기술서비스와 교육 및 컨설팅업무를 전개하고 있다. 전체 인력의 7%가 박사, 38%는 석사학위를 소지자일 만큼 고급 기술인력들이 한데 모여, 한마디로 종업원들 개개인의 기술지식이 핵심 자산인 기업이다. 가장 전형적인 지식기반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또 SAIC는 기술기반기업에 걸맞은 소유․지배구조를 갖춘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 회사가 지난 30여년 동안 연평균 20% 이상의 비약적인 성장을 해온 데에는 모든 종업원에게 회사 발전에 기여한 공로에 비례해서 주식지분을 갖게 하는 종업원지주제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바이스터 회장은 처음부터 줄곧 ꡒ회사에 공헌한 사람이 회사를 소유해야 한다ꡓ는 방침을 세우고 자기 지분을 종업원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물론 이익을 바탕으로 자본금을 키우면서 계속 종업원들에게 주식을 배분했다. 6월 말 현재 SAIC가 발행한 주식 2억5천만주 가운데 전․현직 종업원들의 소유지분이 96%(전직 20%), 경영진이 3%, 외부컨설팅회사들이 1%이다. 최초 100% 소유주였던 바이스터 회장의 지분은 1.3%에 불과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을 종업원들이 회사로부터 처음 주식을 받을 때에는 대부분 공짜라는 것. 대신 종업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그만큼 회사의 이익에 기여함으로써 회사로서는 충분한 보상을 받는다는 게 SAIC의 주식무상배분에 담긴 철학이다.

공짜로 주식 배당… 인위적 감원 없어

이 철학은 실제로 검증됐다. 바이스터 회장은 ꡒ종업원지주제도야말로 우리 회사가 다른 경쟁자들보다 앞설 수 있도록 하는 ꡐ마술적 기능ꡑ을 했다ꡓ고 말한다. 고급두뇌들이 다른 회사에서 훨씬 높은 연봉을 제시하더라도 ꡐ내 회사ꡑ를 떠나지 않으려 했고, 말단사원에서부터 기술혁신과 업무개선, 신규사업 개척 등 기업가 정신이 끊임없이 발휘돼 회사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경영진이 하는 일은 회사 내 비슷한 업무를 하는 부서들끼리 서로 과도하게 경쟁을 해 전체 조직의 화합을 해치지 않도록 막는 것 정도였다. 이 회사의 각 부서에는 ꡐ우리 가운데 누구도 우리 모두만큼 현명하지는 않다ꡑ는 사훈이 걸려 있다.

SAIC는 벤처거품 붕괴나 주가폭락, 경기한파의 충격에서 무풍지대나 다름없다. 회사설립 이래 32년 동안 지금까지 한번도 인위적인 감원이 없었다. 또 이 회사는 놀랍게도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을 스스로 포기한 회사이다. 아니 외부자본 유입을 오히려 철저하게 경계하는 회사이다. 회사의 재무구조로 봐서는 뉴욕증시에 당장 상장을 하면 막대한 상장이익을 거두는 동시에 넉넉하게 현금을 확보할 수 있지만 종업원들이 하나둘씩 보유지분을 팔아버릴 경우 종업원지주제가 무너질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종업원들은 보유주식을 ꡐ그림의 떡ꡑ으로만 쳐다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의문을 SAIC의 한 자회사가 풀어줬다. SAIC는 종업원 보유지분의 환금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1975년에 ꡐ불ꡑ(Bull)이라는 주식중개회사를 만들어 종업원들끼리 주식을 사고팔 수 있는 내부시장을 열었다. 주식가격은 회사의 재무상황, 미래수익가치, 뉴욕증시에 상장된 동종업종주가와 상대비교 등 몇 가지 기준을 가지고 외부전문기관의 평가를 얻어 이사회에서 분기별로 결정한다. 이에 따라 종업원들이 주식을 사고 팔되, 만약 매도물량이 매수신청물량을 웃돌 경우에는 회사가 나서서 환매한다.

이렇게 거래되는 주가추이를 보면 SAIC가 웬만한 외부충격에는 끄떡도 하지 않을 회사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지난해 나스닥지수가 반토막 나는 동안 SAIC 주식은 오히려 18.9% 올랐고, 올 들어서도 나스닥지수는 단 3개월 만에 29%나 떨어진 반면 SAIC는 2% 하락에 그쳤다. 소폭이나마 주가하락에 대해서도 주식프로그램 담당 카랜 가슨 이사는 ꡒ오해하지 말라ꡓ고 주문했다. ꡒ우리 회사의 재무건전성이나 수익성은 완만한 상승세를 유지했지만 주식평가시 나스닥의 동종업종 주가변동을 반영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ꡓ

SAIC가 굳이 상장을 기피하고 적지 않은 시장운영비용까지 감수하면서 내부주식 거래만 고집하는 이유를 묻자 회사 관계자들은 장황하게 설명한다. ꡒ우리가 외부투자자들의 자산을 빌려 단순히 임금만 받고 일한다면 지금과 같은 기업성과를 낼 수가 없다고 본다. 차를 랜트한 사람이 결코 세차를 하지 않는 것처럼 종업원들이 회사의 주인이 아니면 회사발전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는가.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통제당하고 싶다. 매일 아침 조간신문에 나온 주가를 바라보며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궁극적으로 투자수익에만 관심이 있는 외부투자자들의 간섭을 받을 수는 없다.ꡓ

미국 1만1천여 기업이 종업원지주제 도입

SAIC는 미국의 특별난 기업이 아니다. 이 회사처럼 아주 정교하고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종업원이 다수 지분을 보유한 기업들은 수두룩하다. 전미종업원주식소유센터(NCEO)의 집계에 따르면, 2000년 말 현재 종업원지주제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 기업 수가 1만1150개에 이르며 민간부문 전체 임금근로자의 8.5%인 850만명이 이 제도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보유한 자기 회사 주식의 총평가액은 99년 말 현재 약 5천억달러, 종업원 1인당 평균 약 5만8천달러어치(약 7500만원)의 자기회사 주식을 가진 셈이다.

미국 정부는 오래 전부터 종업원지주제가 활성화하도록 여러 가지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왔다. 미국의 종업원주식소유제도(ESOP: Employee Stock Ownership Plan)는 20세기 초반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연방정부가 내국세법에, 기업이 성과배분의 한 방식으로 종업원들에게 주식을 제공할 경우 세제혜택을 주는 조항을 만든 게 1921년이다. 그러나 종업원들은 자기 돈으로 회사와의 협상에 따라 정해진 가격으로 주식을 살 수 있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이른바 ꡐ종업원주식구매제도ꡑ가 바로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국내 종업원지주제도 역시 종업원들이 현금으로 자사주를 산다는 점에서 사실 미국의 1920년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차입형 ESOP로 회생기반 마련한 기업들

그러나 이런 단순한 방식의 종업원주식구매제도는 1929년 대공항과 2차 세계대전 직후의 주가폭락이 이어지면서 종업원 주주들에게 막대한 재산상의 손실만 안겨줬다. 이런 뼈아픈 경험과 함께, 점차 소수자본가로 부가 집중하는 현상을 막지 못하면 미국이 체제위기에 놓일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1950년대 후반부터 강하게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즈음 저명한 법률가이자 투자은행가였던 루이스 캘소가 전혀 새로운 방식의 ESOP안을 들고 나왔다. 그는 칼 마르크스의 ꡐ공산당 선언ꡑ에 빗댄 ꡐ자본가 선언ꡑ을 통해 ꡒ모든 임금근로자들이 자본가가 되게 하자ꡓ며 ꡒ그러나 종업원들은 자기 회사 주식을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재정적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의 신용을 담보로 외부로부터 자금을 차입해 자사주를 사게 하고, 빌린 돈은 회사가 나중에 이익을 내서 조금씩 갚아나가도록 하자ꡓ고 제안했다.

지금 미국 종업원지주제의 핵심기재인 차입형 ESOP이 바로 이것이다. 종업원들은 회사주식을 사는 데 자기 주머니에서 돈을 한푼도 내지 않기 때문에 전혀 손해볼 게 없다. 다만 회사가 종업원 주식구매자금으로 빌린 대출금을 갚을 수 있도록 비용을 줄이거나 적극적인 생산성 향상에 노력해야 한다. 캘소는 ꡒ자본가가 자기자본을 확대재생산할 수 있는 것처럼 종업원들도 스스로 생산성을 향상시켜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ꡓ고 주장했다.

캘소의 제안은 1974년 당시 미 의회 재무위원장이었던 러셀 롱 상원의원의 주도로 ꡐ종업원퇴직소득보장법ꡑ(ERISA)이 제정되면서 지금과 같은 제도적 틀을 갖추게 된다. 이 법안에는 차입형 ESOP를 시행하는 기업과 종업원, 그리고 대출 금융기관에까지 여러 가지 세제상 유인책이 들어 있다. 이를 계기로 197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종업원지주제가 급속하게 확산된다. 특히 70년대 중반부터 90년 초반까지 구조조정과정에서 노사정 합의로 경영위기에 빠진 기업들의 무분별한 도산과 대량실업을 막는 유용한 기재로 활용되었다. 크라이슬러자동차와 위어턴철강 등 미국을 대표하는 제조업체들의 회생기반은 바로 차입형 ESOP이다.

미 중부 시카고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최대 항공사 유나이티드에어라인(UA)도 지난 90년대 초반에 몰아닥친 경영위기를 종업원지주제로 돌파한 회사이다. 94년 7월 이 회사의 조종사노조와 정비사노조가 7년 동안의 임금 및 복지여건을 양보하는 대가로 50억달러에 회사 지분 55%를 인수했다. 그뒤 시장점유율과 영업이익이 크게 높아졌고, 델타항공이나 아메리칸에어라인 등 경쟁 항공사들이 10~15%씩 감원을 한 반면 UA는 그만큼 더 신규인력을 고용하기도 했다. UA의 프레드릭 두빈스키 조종사노조위원장은 당시 종업원기업인수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ꡒ우리의 지속적인 관심은 회사주식으로 돈을 버는 데 있지 않았다. 위기를 내세우며 감원 위협을 하고 업무여건을 열악하게 만드는 경영진을 몰아내고 우리가 주인으로서 회사를 살려내기 위해 지배주주로 나선 것이다.ꡓ

1990년대 초부터 미국이 신경제 호황터널로 접어들어서는 전체적으로 ESOP을 도입하는 기업의 증가추세가 조금 둔화됐다. 또 주식시장이 과열되었을 때에는 종업원지주제를 단지 임금근로자들의 효과적인 재산늘리기 수단으로만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종업원지주제 컨설팅 및 교육기관인 오너십 어소시에이츠의 크스토퍼(크리스토퍼???) 매킨 회장은 ꡒ종업원이 다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주요한 의사결정에 종업원의 의견을 배제하는 기업들이 많고 이런 기업일수록 종업원의 소유참가가 생산성 증대효과로 잘 이어지질 못한다ꡓ면서 앞으로는 소유구조에 걸맞은 경영지배구조를 어떻게 구축하느냐가 종업원지주제 활성화의 관건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소유구조 걸맞은 경영지배구조 구축이 관건

이런 장애요인과 상관없이 미국은 요즘 경기가 뚜렷한 하강국면으로 접어들어 종업원지주제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 샌디에이고의 비영리 경영자문기관인 기업개발재단(FED)의 마틴 스타우버스 컨설팅 팀장(변호사)은 ꡒ경기침체로 사업을 포기하려는 기업인들이 종업원들에게 지분을 넘기는 사례가 많다ꡓ면서 ꡒ이렇게 해서 기업도산에 따른 대량실업을 막을 수 있고 지분을 넘겨받은 기업에서는 종업원들의 창의성과 자발적인 생산성 증가 노력을 촉발시켜 경기회복의 발판이 될 수 있을 것ꡓ이라고 말했다.

꿩 먹고 알 먹는 ꡐ차입형 ESOPꡑ

기업금융 총아로 재무구조 개선에 기여…

금융기관에도 돈 되는 대출로 여겨져

미국 종업원주식소유제도(ESOP)의 구조는 아주 복잡하다.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기업의 종업원들에게 물어봐도 ꡒ굿 아이디어ꡓ라고 할 뿐 정확하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ESOP 시행에는 첨단 금융기법이 동원된다. ESOP를 도입하려면 회계사, 변호사, 경영컨설턴트, 평가기관, 투자은행과 대출 금융기관 등 수많은 전문가가 달라붙어야 한다. 그래서 ESOP를 두고 ꡐ기업금융의 총아ꡑ라고 부르기도 한다.

ESOP를 시행하려는 기업에서는 먼저 종이회사(페이퍼 컴퍼니) 형태로 ESOP 신탁을 별도로 설치해야 한다. 종업원을 대신해 이 신탁에서 모든 업무를 처리한다. 신탁은 노사공동으로 선임되는 ESOP위원회에서 운용을 맡는데, 대부분 금융기관이나 외부전문가가 운용을 대행하거나 조언해준다. 신탁이 종업원의 재산에 대한 ꡐ선량한 관리자ꡑ로서의 의무를 게을리하면 미 연방 신탁업법에 따라 제재를 받는다. 이렇게 굳이 신탁을 따로 두는 이유는 종업원지분의 관리를 체계적으로 하고 금융거래를 하기 위해서이다.

ESOP에서 신탁의 주인은 종업원이지만 실제로 종업원들이 내는 돈은 없다. 회사나 대주주가 금전적 대가없이 주는(출연) 주식이나 현금, 회사의 지급보증으로 금융기관에서 빌리는 돈으로 신탁의 재산이 쌓인다. 기업들이 차입형 ESOP를 도입하면 재무구조가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종업원의 자사주 투자를 위해서 자금을 빌리는 채무자는 ESOP 신탁, 주식의 소유권은 종업원, 또 상환은 회사가 책임진다. 회사는 일시에 주식발행을 통한 자본현금이 들어오고 차입금 상환기간은 보통 7년 이상으로 장기화돼 있어 현금흐름이 좋아지는 게 당연하다. 어떻게 보면, ESOP를 매개로 숫자놀음으로만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것 같지만 이런 식으로 기업들이 조달한 자금이 엄청나다.

워싱턴 소재 ESOP협의회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 전체 ESOP 시행기업의 약 75%(8300여개)가 차입형을 채택하고 있고, 이들 기업이 종업원들에게 배정한 주식가치의 99년 말 현재 평가액이 무려 4천억달러에 육박한다고 한다. 우리돈으로 무려 500조원에 이른다. 국내 상장․등록기업들이 주식발행을 통해 지금까지 조달한 자금을 다 합쳐봐야 미국 기업들이 차입형 ESOP를 통해 조달한 자본금의 절반 수준에 머무는 셈이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빚을 내 종업원지주제를 운용하는데도 금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차입형 ESOP 시행기업에 대출해준 돈이 이렇게 많을 수 있을까? 미국에는 ESOP 관련 금융서비스를 전담하는 금융회사들이 즐비하다. 대규모 대출금이 필요한 기업에는 여러 투자기관의 컨소시엄이 구성되기도 한다. 그것도 아주 장기저리로 대출해준다.

뉴욕 맨해튼에서 활동하고 있는 ESOP 전문금융회사인 KPS펀드의 컨설턴트인 조시 울프-파워스는 차입형 ESOP기업에 대한 금융이 이렇게 원활한 배경을 아주 간단하게 ꡒ돈이 되기 때문ꡓ이라고 말했다.

ꡒ94년까지는 ESOP대출에 대해서는 미 연방세법에 따라 이자수익의 절반만큼 세금감면 혜택을 줘 금융자본을 유인했다. 그러나 이 세제혜택이 없어진 다음부터는 순수하게 ESOP 자체의 이점 때문에 돈이 몰리는 것이다. 우리는 기업가치의 핵심은 인적자산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이런 핵심자산의 자발적인 생산성 향상 동기를 부여하는 제도를 채택하는 기업은 미래가 밝다고 본다.ꡓ

공기업 민영화 ꡐESOP 해법ꡑ

미국식 차입형 ESOP 원리 각국에 확산…

고용불안 등 없이 사회적 소유 이끌어

미국의 종업원주식소유제도(ESOP)가 요즘 전세계로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적용분야는 미국과 달리 주로 공기업 민영화이다. 동유럽의 옛 사회주의국가들과 중국, 인도,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개발도상국들이 공기업 민영화의 한 수단으로 미국의 ESOP을 본뜬 종업원지주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ESOP를 통한 민영화가 유행이다.

워싱턴 소재 기업개발재단(FED)의 데이비드 빈 소장은 ꡒ미국식 차입형 ESOP 원리를 일부 또는 완전히 본떠 공기업 민영화에 활용하고 있는 국가가 지금까지 대략 20여개이며 또다른 20여개국이 적극 검토하고 있다ꡓ고 전했다. 그는 지난 2년여 동안 짐바브웨와 베네수엘라 등지의 정부를 상대로 직접 이 분야의 자문활동을 해오기도 했다. ꡒ미국은 원래 정부가 공공서비스를 대부분 외부용역에 맡겨 지금은 민영화 대상 공기업이 별로 없다. 그런데 아직도 공공부문의 비중이 큰 체제전환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는 공기업 경영에 시장경제의 원리를 효과적으로 도입하는 동시에 이에 대한 종업원들의 반발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미국의 ESOP에서 찾고 있다.ꡓ

아무리 민영화의 논리적 명분이 있다 해도…

지난 20여년 동안 공기업 민영화는 전세계적으로 유행처럼 번졌다. 정부가 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민간기업보다 비효율적이고 공기업 부실화에 따른 위험을 국민들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민영화시켜야 한다는 게 논리적 명분이다. 대체로 이 논리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민영화 방식과 대상범위에 대해서는 각국에서 이견이 분분하다. 우선 가장 큰 논란은 누구에게 어떤 기준으로 팔 것인가에서 시작된다. 만약 인수가격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민영화 절차는 간단하다. 돈을 많이 주는 데에 팔면 된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하고 무식하게 민영화를 추진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정권이 부패해서 검은돈을 챙기려고 마음먹지 않는 이상 공기업을 민영화하면서 민간독점을 더욱 심화하거나 언제 떠날지 모를 외국자본에 공적 기능을 맡기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다. 헐값에 국부를 팔아넘겼다는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실제로 이런 모험을 겁없이 감행한 나라도 있다. 만성적인 금융위기에 빠져 있는 중남미 국가들이 과거에 그랬다. 국내에서는 국민의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 방식도 마찬가지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기업을 국내외자본 구분없이 무분별하게 매각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첨병구실을 하는 세계은행조차 문제삼고 있다. 세계은행 경제자문관 데이비드 앨러만 박사는 ꡒ전후 일본에서 가족소유 거대기업이 해체된 다음 관계회사간 상호출자나 기업공개 등으로 소유구조를 바꾼 것은 외국자본의 자국 산업지배를 막기 위해서였다ꡓ며 ꡒ한국의 핵심공기업이나 대기업도 광범위한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로 소유․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게 바람직하다ꡓ고 권유했다. 앨러만 박사는 전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공기업 민영화 국가로 중국을 꼽았다. 중국은 ꡐ사회적 소유ꡑ라는 개념을 도입해 각 지방정부 주도로 민영화를 추진하되, 주식지분을 종업원과 주민들에게 반씩 나눠주는 방식으로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민영화에 따른 공기업 종업원들의 고용불안도 민영화 논란의 큰 쟁점이다. 공기업 민영화는 경쟁체제 도입과 정부의 각종 보호장치 철폐가 뒤따른다. 일단 민영화한 기업은 수익성이 최고의 목표일 수밖에 없다. 당장 수익성을 높이려면 비용을 줄이는 게 상책이고, 이는 인력감축을 뜻한다. 실제로 국내에서 ꡐ주인있는 민간기업ꡑ으로 넘어간 공기업은 대부분 인력감축을 단행했다. 이를 지켜본 민영화 대상 공기업의 종업원들은 반발의 목소리를 내는 게 당연하다.

미국 워싱턴 소재 경제사회정의센터의 노먼 커랜드 회장(법학 박사)은 ꡒ민영화는 정치적 행위이며 어느 나라 정부에서나 그 동기와 갈등유형, 정권의 위험요소 등이 모두 비슷하다ꡓ면서 ꡒ미국의 차입형 ESOP의 원리를 공기업 민영화에 적용하면 여러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길이 있다ꡓ고 말했다. 데이비드 빈 FED 소장도 ꡒ민영화 대상 기업을 종업원지주제로 전환하는 게 지고지순한 방안일 수는 없지만 공기업 민영화에 따르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갈등과 부작용들을 아주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푸는 유용한 수단임에는 분명하다ꡓ고 강조했다.


종업원의 목소리를 들어라!

한국의 종업원지주제 정착을 위한 제언…

경영참가 프로그램 확대해야 성과 높아

한국에서도 종업원들에게 기업의 ꡐ주인과 같이 사고하고 행동ꡑ하게 하는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하는 모양이다(지난 7월 임시국회에서 새로운 종업원지주제 시행근거를 담은 근로자복지기본법이 통과된 사실을 말함). 이 제도의 취지는 기업이 만들어낸 경제적 성과를 종업원들에게 돌려줌으로써, 종업원들이 기업의 발전을 위해 좀더 많은 아이디어와 노력, 정보를 쏟아내게 하자는 것이다.

종업원들의 소유문화 적극 개척해야

그러나 단지 종업원들에게 지분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종업원지주제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게 미국의 경험이다. 기업은 종업원들에게 경제적 소유권을 주는 동시에 소유문화도 적극 개척해야 한다. 이렇게 두 가지를 모두 갖추는 기업만이 종업원지주제의 취지를 살려낼 수 있다. 즉 회사의 재무상황에 대한 정보와 종업원의 주식소유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기능을 하는지 종업원들에게 재대로 이해시켜야 하며, 종업원들이 회사에 유용한 아이디어와 정보를 스스로 공유할 수 있게 하는 체계적인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기존의 관료적이고 관리․통제 중심의 조직문화에서 탈피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의 경제구조가 모든 국가에 모범이 될 수 없는 이상 미국의 고유한 제도와 그 제도의 시행경험을 다른 나라에도 적용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종업원지주제 시행경험에서 얻은 일반적인 인식은 한국의 종업원지주제를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게 하는 데 도움를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업소유문화의 기본전제는, 기업이 효율적이려면 종업원들이 다함께 정보와 교육훈련 기회를 나누며 그들이 실제로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의사결정은 스스로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업원들이 팀을 이뤄 일을 하는 것은 아이디어를 나누고 문제가 생기면 다함께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회사 내 서로 다른 부서의 종업원들끼리도 한 부서의 일이 다른 부서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부서간 원활한 업무협조를 통해 기업 전체 역량의 시너지효과를 어떻게 극대화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종업원지주제를 통해 소유구조에 참가하는 종업원들은 자기 회사의 전체 영업성과와 다른 여러 가지 업무성과를 알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팀의 능력과 성과를 정확히 알아야만 적절한 목표를 세울 수 있고, 목표가 적절해야만 성과도 제대로 평가된다. 경영진의 구실은 종업원들에게 무엇을 하도록 지시하는 게 아니라 종업원 스스로 좀더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지난 5년여 동안 전미종업원주식소유센터(NCEO)와 미국의 많은 학자들은 종업원지주제와 소유문화, 기업성과와의 상관관계를 밝혀내기 위해 여러 차례 다양한 연구활동을 해왔다. 또 만약 상관관계가 있다면 어떤 환경조건이 갖춰져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분석도 활발했다. 모두 9건의 중요한 연구성과가 있었는데, 공통적인 결론이 하나 있다. 종업원지주제는 경영참여 프로그램과 결합할 때에만 구체적인 성과를 낸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경영참여 프로그램이란 대단한 게 아니다. 종업원들이 하는 업무에 대한 의사결정이 내려질 때 종업원들의 목소리가 상시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수렴되는 구조를 말한다. 가령 자율경영팀, 종업원 참여그룹, 종업원 자문위원회 따위가 이런 구조를 만들어낸다. 이런 경영참여 프로그램 없이는 기업의 경영성과에 종업원지주제가 단지 일회적으로만 영향을 끼친다는 게 그동안의 실증적 연구분석 결과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회사의 모든 경영활동에 종업원들이 개입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경영을 위한 정보의 보고인 종업원들

소유참가를 통한 종업원들의 경영참가는 특히 요즘처럼 첨단기술시대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불과 몇해 전까지만 해도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소수 경영진들의 몫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다. 기업이 중요한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모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은 엄청나게 짧아졌고, 시장은 더욱 세분화, 특화되고 있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이다. 기업활동에 필요한 정보는 컴퓨터로 단 몇초 만에 수집, 가공, 분석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정보는 기업 내 모든 종업원들이 각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다시 재구성돼 삽시간에 전파된다.

설비운전을 맡은 종업원들은 전체 설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경영진보다 더 잘 안다. 고객서비스 담당은 고객의 욕구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훤하게 꿰뚫어볼 수 있다. 회사의 중요한 기술이나 시장정보를 일부 경영진들만 알고 지내는 시대는 지나갔다. 기업은 이런 변화를 무시하고 정보교환과 의사결정 권한을 특정그룹에만 맡겨놓고서 느림보 경영을 할 수도 있다. 사소한 의사결정도 반드시 임원회의를 열고 이사회 승인을 거치도록 하는 기업이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 앞으로 10여년 동안 승자가 될 수 있는 기업은, 좀더 많은 종업원들이 좀더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되 의견을 모아 결정을 내리기까지가 더욱 신속해야 한다. 이런 기업들만이 시장에서 앞서 나갈 수 있고, 때로는 시장 자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종업원집단은 기업에 가장 유용하면서도 가장 풍부한 정보의 보고이다. 그들은 고객과 협력업체, 설비, 또 새로운 기술과 직접 맞닥뜨린 사람들이다. 그들은 회사가 좀더 잘 돌아가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경험과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이 종업원들의 이런 훌륭한 지적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동기부여 장치가 없다. 많은 경영자들이 종업원의 잠재능력을 키우는 데 게을리하고 종업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종업원지주제에서는 이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종업원 개개인의 운명이 회사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업원지주제는 단지 해결의 실마리일 뿐이다. 종업원들의 능력을 규칙적이면서도 투명하게 서로 나눌 수 있는 구조없이는 종업원들은 회사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고하고 행동하기 어렵다.

실제로 종업원 소유문화와 경영참여 프로그램이 잘 갖춰진 기업에서는 부서간에 돌아가면서 일을 하고, 상호보완기능이 발휘될 수 있도록 업무협조협의회를 1주일 주기든 한달 주기든 정례화하기도 한다. 만약 특정 종업원이나 부서에서 의미있는 제안이 나오면 특수프로젝트팀이 구성돼 운영되다가 과제를 마친 다음 해체한다. 팀조직은 구체적인 실행업무 없이 단지 아이디어와 정보만 교환할 수 있다. 다만 특정 업무수행을 목적으로 팀이 꾸려졌을 때에는 구체적인 과제와 권한 설정이 필요하다. 팀에 떨어진 업무나 현안문제에 대한 명확한 이해도 있어야 한다. 아주 이상적인 문화를 가진 조직에서는 팀 활동을 효과적으로 하는 교육훈련을 시키기도 한다.

다각적 교육훈련 통해 소유 의미 전파해야

미국에서 종업원주식소유제도(ESOP)를 시행하는 수많은 기업들 가운데 아직도 종업원들이 어떤 원리와 취지로 작동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이 많다. 간혹 종업원을 위한 경영참여 프로그램이 아주 잘 갖춰진 기업에서도 그렇다. 종업원들은 회사의 주인임을 증명하는 증서인 주식이 무엇인지, 심지어는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이 제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작업을 하는 데에는 아직도 상당한 도전이 남아 있다.

기업은 종업원 소유의 의미를 이해시키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문서화된 자료로, 또 어떤 경우에는 비디오나 오디어테이프로 이해시킬 수 있다. 필요하면 회의를 열어 전파하기도 한다. 먼저 특정 종업원들에게 교육시켜 다른 종업원들 교육에 연쇄적으로 투입하는 것도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교육받은 내용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한겨레21 특집] 제373

TAG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