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네 결혼식.

주말에 영양군을 다녀왔다. 친구 녀석의 결혼식 때문이었다.
멀긴 참 멀었다. 울산에서 고속도로를 경유해서 갔더니 대략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게다가 갑작스레 짓궂어진 날씨 덕분에 속도를 내기도 힘들었다.
"녀석 기왕이면 교통 편한대로 좀 나와서 결혼식 할 것이지" 이래저래 툴툴 거리며 9시 30분 울산에서 출발.
대부분의 친구들이 서울 아니면 경기권에서 결혼하는 덕분에 근래에 결혼식을 가본지가 백만년은 된 듯하다.
그저 친구들 편에 부조금만 들려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결혼식이 있었던 영양성당은 그리 크지 않은 곳이었다. 화려하지도 않고, 어찌보면 조금 남루한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속엔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지금부터 31년 전(물론 같은 날짜는 아니지만 ㅡㅡ;;) 결혼한 친구의 부모님이 같은 성당에서 결혼을 하셨고, 시간이 흘러 아들이 같은 장소에서 결혼을 하게 된 것이었다.
가족틀에겐 이 보다 더 의미있는 장소가 없을 듯. 물론 뒷얘기를 들어보면 ^^ 전라도 정읍이 고향인 신부쪽 부모님과 신랑쪽 부모님이 서로 장소 정하기를 고사하시다가( 정읍에서 영양까지는 대략 6-7시간 소요되셨다고 헉.) 이 곳으로 정하셨다는 훈훈한 얘기가.

기념사진 촬영은 야외에서 있었는데, 추운 날씨 덕분에 모두들 얼굴이 뽀얗게 나왔다는.ㅎㅎ
성당 인근의 식당 몇군데에서 하객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있었다. 독특한 것은 이 곳에선 결혼식에 '문어'가 빠지면 안된다고 한다. 마치 광주쪽 친구들 결혼식에 가보면 '홍어'가 빠지지 않는 것 처럼.
기회가 되면 각 지방 결혼식에 빠지지 않은 음식을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을듯. 왠지 그 속에는 그 음식이 빠지면 안되는 사연들이 스며들어 있을 것 같다.

각자의 바쁜 일정들, 먼 거리, 여러가지 때문에 결혼식에 참석했던 대학 동기들과는 그리 길게 있질 못했다.
아쉬웠다. 잠시나마 예전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에 결혼한 녀석은 대학교 2학년 때 함께 살았던 4명의 룸메이트 중 하나였다. 그 때 우린 우리가 무얼 하고 있는건지 아무도 몰랐었다. ㅋㅋ 한명은 머리가 녹색이었다. 한명은 기타에 미쳐 딩가딩가거렸고(이번에 결혼한 녀석. 이 친구 덕분에 헤비메탈 음악을 접했었다.), 그나마 나이가 좀 있었던 삼수생 형은 보따리 장수로 나갔었다. 하루하루가 너무 길었고, 무료하고, 참 생각없었던.
그랬던 친구들이 어느새 결혼을 하고, 또 누군가는 승진을 하고, 다른 형은 회사를 그만두고 건축사 시험을 준비하고, 그렇게 나이먹어 간다. 그 때 그 시간이 우리에겐 어떤 의미였을까?

라디오를 벗삼아 돌아오는 길. 이런 저런 생각과 기억의 조각들이 떠올랐다. 아마도 울긋불긋한 산과 마치 산이 내뿜은 입김처럼 낮게 드리운 구름들이 만들어낸 이질적인 풍경들이 더 그런 기억들을 부추겼던 듯.
이번 겨울이 가기전에 친구들 얼굴이나 한번 보러가야겠다.


크리스마스에는 - 이승환 (이승환 작사/작곡)

내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한 순간들은 항상 내 맘속에 남아 있는데
이젠 그 친구들 소식조차 알 수가 없네
눈 내리는 밤엔 더욱
생각나는 그 시절 즐겁던 기억들
이젠 모두 다 사라져 버리고 희미해진 아득한 추억

언제 다시 그 곳에서
우리들 노래하며 웃을 수 있나
그때처럼 그 거리를
우리들 얘기하며 걸을 수 있나

크리스마스에는
그 거리에 작은 소망들이 피어나
그 친구들 환한 웃음 다시 볼 수 있겠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짧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참돼지고기배 스타리그 12강에서 좌절.  (13) 2008.11.28
웃음이 부족해.  (9) 2008.11.18
갑자기 생각난 구절.  (8) 2008.11.04
spell  (0) 2008.11.03
건축하기  (10) 2008.10.29
TAG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