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슨카운티의 다리 201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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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영화를 봤다.
하지만 여기서 하는 얘기는 그것에 대한 것 만은 아니다.
메릴 스트립은 저 때에도 '연기 기계'였나보다. 기계라니 사람에게 기.계.라니.
하지만 정말 그렇다.
조그만 손짓, 수줍은 듯한 미소, 바로 앞에 멈춘 그를 향해 차문을 열고 나갈듯 망설이는 몸짓까지.
그 얘기는 여기까지고 이제부턴 결혼에 대한 얘기다.
결국 죽어서는 그에 곁에 있겠다는 그녀의 바램, 그 바램이 죽어야만 가능한 건 결혼이라는 제도에 기인함이 크므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미혼 남성 384명, 미혼 여성 38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미혼 여성 결혼하지 않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일에 더 열중하기 위해서'가 26.2%,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가 24.4% 나머지는 아래 참조.
1. 나의 일에 더 열중하기 위해 - 26.2%
2.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 - 24.4%
3. 경제적 기반 부족 - 20.1%
4. 상대방에게 구속되기 싫어서 - 9.8%
5. 결혼으로 인한 책임 부담 - 9.3%
6. 결혼은 여성에게 불리 - 4.4%
의외로 결혼 자체의 구속이나, 여성에게 불리한 면에 대한 언급이 작아서 의외다.
물론 대부분의 여론조사가 그렇듯, 피응답자는 다소 미화된 답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것 역시 그렇다고 봐야 할까.
남자인 내가 봐도 여성에게 불리한 것 투성인데.
일반적으로 결혼에 대해 제기되는 문제를 살펴보면 그 기저에는 상대방에 대한 소유욕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마치 결혼을 통해 상대방에 대해 배타적인 소유권을 가지게 되는 것 처럼 인식하면서 생기는 문제들이랄까.
이성이든 동성이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그 만남을 이어가는 연속선상에서 결혼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phase 2. 즉, 새로운 단계로 인식하는 것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 결혼도 안해본 아니 못해본 미혼이 늘어놓기엔 한계가 많은 주제라 여기서 패스.
그래도 누구나 하고, 언제나 하나의 모습인 것 같은 결혼에 대해서 새로운 방향으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해서 아래 글은 참고로 둔다.
섹스도 가치를 가지는가?
“30, 40대 자녀를 가진 성인가정이 이혼할 때 지출하게 되는 연간비용은 위자료 및 자녀양육비, 정신적 고통 등을 평균하여 1인당 약 2,500만원, 남녀 둘이 합쳐 3,100만원. 따라서 이 비용을 한해의 총 이혼가구수와 곱하게 되면 성인남녀가 이혼할 때 생기는 사회적 비용의 연간 액수가 나오며 이는 약 5,300억원. 이는 2003년 한국의 국가예산 115조원의 약 0.46%에 해당하며 정부의 2004년 청년취업 종합대책에 의해 약 14만 명의 청년에게 일자리, 연수, 훈련기회 제공할 수 있는 정도의 액수에 상당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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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총 이혼 건수는 16만7,100건으로 하루 평균 458쌍이 헤어짐. 이는 전년도인 2002년의 14만5,300건보다 15%(2만1,800건) 증가한 것. 반면 혼인은 2003년 30만4,900건으로 하루 평균 835쌍이 결혼하여 전년도의 30만6,600건보다 0.6%(1,700건) 감소한 수치. 이 통계에 따르면 결혼은 하루에 835쌍이 하는 반면 이혼은 하루에 458쌍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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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3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3년 혼인 및 이혼 통계 결과」 |
글2. 결혼제도의 험난한 미래,뉴욕타임즈, 타말 르윈 기자
전통적으로 "조금 결혼했다"는 말은 "조금 임신했다"는 말 만큼이나 말이 되지 않는 표현이었다. 즉 결혼을 했거나 안 했거나 양자택일이 있을 뿐이었다는 말.
하지만 이제 문제는 더 이상 흑백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동성혼 문제가 법정에서 다뤄지게 되면서 법은 "결혼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화요일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의 결정은 결혼의 회색 영역으로 보다 많은 소송을 유도할 여지를 남겼다.
지난 십 여년 동안 많은 유럽국가들은 다양한 형태의 "결혼"을 실험해 왔다. 노르웨이와 덴마크가 시작한 등록 파트너쉽제부터, 3개월 전에 통보하는 것으로 해지할 수 있는 프랑스의 팍스제도까지 말이다.
미국의 경우도 이성간이건 동성간이건 점차 비전통적인 결합을 인정해 왔다. 몇몇 주와 자치정부를 포함한 상당수 고용주는 "가내동반자(domestic partners)"에게 몇몇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물론 버몬트주는 동성커플에 대해 "시민결합"을 인정하고 있고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양한 계층에서 다양한 형태의 "준결혼(semi-marriages)"을 만드는 것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결혼과 동거의 경계선을 허무는 것 부터, 사실혼에 대한 숙고, 그리고 나아가 결혼문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배제함으로서 결혼을 "비법제화"하며 결혼을 종교적 행사나 개인적 계약의 문제로 남기는 것에 대한 논의까지가 말이다.
1960년대 이래 결혼율은 낮아져 왔다. 반면 "결혼은 문제성있는 제도"라는 비판과 때를 맞춰 혼외출산이나, 동거, 그리고 이혼은 모두 증가했다.
아닌게 아니라 미국이 점차 후기결혼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징후도 보인다. 2000년 인구조사에 의하자면 혼자사는 사람이 전체 미국 가구의 26%를 차지하고 있었으니, 이는 아이가 딸린 부부로 이루어진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을 사상 처음으로 독거가구 비중이 능가한 경우였다.
그러나 최근 부분적으로는 동성혼에 대한 논의와 함께 결혼이라는 제도는 핑크빛으로 채색된 재평가를 받고 있는 듯 하다. 지속적인 사랑에 대한 인간의 지대한 열망과 결혼이 자녀와 결혼부부에 가져다 주는 현실적 혜택을 강조하는 주장과 함께 말이다.
컬럼비아대 로스쿨에서 가족법을 가르치는 캐롤 생어는 말한다. "지난 5년 간 '억압적인 결혼제도를 도대체 왜 원하는가'에 대한 저술은 훨씬 줄어든 반면 결혼의 대한에 대한 저술은 훨씬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결혼의 대안이란 보수주의자에게는 맘에 들지 않는 개념이다. 콜로라도주에 위치한 보수단체인 "가족초점"의 글렌 스탠튼은 말한다. "서로 돌보는 관계를 평생 유지하고 아이를 기우는데 책임을 다할 것을 두 남녀가 맹세하는 제도로부터 벗어나면 벗어날 수록 남녀는 물론 아이들의 복지에 중대한 결손이 있어왔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인사들은 "결혼"이라는 용어는 남녀간의 결합에 국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1996년 이래 미국 내 37개 주에서 "결혼은 남녀간의 관계에 국한한다"는 법률을 통과시켰고, 같은 취지의 개헌이 논의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몇몇 보수주의자들은 시민결합과 같은 새로운 사회제도의 필요는 인정하기도 한다. 사회과학자이자 "우리 사회가 어떻게 가족을 약화시켰나"라는 책을 쓴 제임스 윌슨은 말한다. "같이 살기는 원하는 사람들이 제반 문제를 다룰 틀을 원한다는 점을 인정하니까요."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결혼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구조적 접근은 결혼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배제하자는 주장이다.
컬럼비아 대학의 생어 교수는 말한다. "종교적 의식을 원하는 사람은 여전히 그런 의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개개 커플의 합의에 따라 계약서를 쓸 수도 있겠죠. 사실 말이지 이런 현상은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결혼에 임박한 커플이 결혼 전에 체결하는 계약서(prenuptial agreements)도 그렇고 국가와는 아무 상관 없는 동성애자 커플의 예식도 그렇고요. 물론 결혼 외 다른 형태의 서약이 아직 우리에겐 낯설기 때문에 우리는 시민결합을 하거나 가내동반자로 등록하는 사람들에게더 선물을 해야 하는지 헷갈려 하죠."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결혼이 중심적 제도이기도 하거니와 현실적으로 이혼 후 자녀와 재산에 대한 문제를 국가가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결혼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수단체 "가족초점"의 윌슨은 말한다. "국가는 결혼제도에 계속 개입해야 합니다. 결혼이 조직화된 사회의 기초이기도 하거니와, 종종 무책임할 수 도 있는 남성에게 자녀와 관련한 책임을 묻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며, 재산분할이나 양육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말이죠. 이 모든 문제를 계약서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계약의 힘을 보통사람보다 과신하는 법대교수들이나 하는 생각이죠."
의심할 여지없이 결혼은 독특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이성애자 뿐 아니라 많은 동성애자들은 시민결합이나 서약식 혹은 등록 가내동반자제는 결혼이 지난 수 세기 동안의 역사를 통해 수반하는 정서적, 심리적, 영적 무게를 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바드 대학 역사학과의 낸시 코트는 말한다. "결혼은 단순한 권리의 집합이 아닙니다. '결혼'이란 단어는 많은 사람들에게 성스러운 단어입니다. 그리고 그 상징적 가치와 관습, 그리고 역사 때문에 결혼은 우월적인 지위를 차지하죠."
가령 동성혼의 확산을 보라. 지난 여름 자신의 동성 동반자와 "결합식"을 가진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작가 스티브 실버만의 말을 들어보자. "저희 세대는 커밍아웃이 대수롭지 않을 수 있었던 첫 세대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평생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을 때 이를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를 생각했고, 그 때 처음 떠오른 단어가 '결혼'이었죠. 왜냐면 저는 제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거든요. 그러니 당연히 턱시도를 입고, 피로연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듯 춤을 추고, 공화당을 지지하는 연세가 지긋한 친척들을 모두 초대하고, 어머니를 감격의 눈물을 훔치시고 하는 그런 평범한 결혼식을 상기했었죠. 우린 단지 결혼을 원했을 뿐입니다. 그건 단순한 용어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는 '결혼'이라 불리는 것을 할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가 인정하지 않는 것도 결혼이라 할 수 있는가? 아니, 결혼의 정의는 무엇인가? 결혼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생식? 섹스? 재산분할? 종교? 이 문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혼이 어떻게 어떤 연유로 발생했는가에 대한 논쟁은 아닌게 아니라 동성혼에 대한 법정싸움 만큼이나 치열하다.
결혼제도에 찬성하는 "미국적 가치관 연구소"의 데이빗 블랭켄혼에 따르자면 결혼은 약 5천년 전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지역에서 여성과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에 남성을 붙잡에 매기 위한 방편으로 탄생했다.
"인간이 '결혼'이란 말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하고 이와 관련한 법률을 정비하고, 또 젊은이에게 결혼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책자를 만들기 새작한 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였습니다. 결혼은 가부장제의 탄생과 동시에 탄생했죠. 이 시기는 남성이 가족으로 끌어들여지던 시기, 그러니까 누구누구의 씨가 어떤어떤 아이를 낳았다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불분명하며, 과거에 있었던 어떤 결합형태가 오늘 날의 결혼과 동등한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버드 역사학과 코트 교수는 말한다. "일부일처제인 결혼이라는 제도가 기독교 시대 이전에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혼은 어느 순간 불쑥 나타난 제도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가령 구약성서에 나오는 유태인들을 보세요. 모두들 일부다처제적 관계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또 로마나 그리스 시대의 결혼을 보십시오. 남성들은 여러 부인이나 정부를 거느릴 수 있었죠. 젋은 남성 연인도요."
최근의 설문에 따르자면 미국인 대부부은 결혼의 목적이 아이를 갖는 것이라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대부분의 미국인은 동성혼에 반대한다.
프린스턴대 역사학과 교수인 헨드릭 하르톡은 말한다. "우리는 결혼의 한 모델, 즉 젠더적 정체석이 상대적으로 분명한 모델을 대체적으로 폐기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어디로 가야할지, 앞으로 결혼이 어떤 모습을 띌지에 대해 알지 못하죠. 이런 점에서 우리가 미국 내 지역에 따라 '결혼'이라는 단어가 다른 의미를 띄는 시기를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령 지난 1940년대 주 마다 '이혼'의 의미가 달랐던 것 처럼 말이죠. 물론 이런 현상이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만, 매사추세츠 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건 (미국 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주 중 하나인) 유타주가 근시일 내에 동성혼을 인정하는 것은 상상하기가 어렵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