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2009/07/09 - [지어진 것에 대한 얘기] - 포스팅의 적


생각해보면 이건 복합적인 원인들의 결과다.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습기를 한 껏 품은 공기가 학원에서 돌아오는 내 발걸음을 
그냥 두지 않았다. 일주일 째 끊고 있던 담배가 왠지 모르게 끌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현관 문을 열고 들어간 아파트는 닫아둔 창문 덕분에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한낮의 기운을 내뿜었다.
창문을 열고는 개수대에 담긴 냄비를 헹궈 물을 올렸다. 아주 잠깐..잘 밤에 무슨 커피..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느새 난 두 스푼채 커피분말을 덜어내고 있었다. 설탕도 없이.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리곤 별 생각없이 어두워진 거실을 지나 침실로 가서는 머리맡 스탠드를 켰다. 한 손에는 책 한권을 들고 

그때였다. 가만히 고개 숙인 채 듣고 있던 가스미가 내게 불쑥 말했다.
"오차쓰케 이야기......."
"응?"
"그 얘기, 지금 처음 한 거야, 하야세 씨한테?"
"응......"
가스미는 희미한 목소리로 탄식했다.
"늦었어. 그렇다면 너무 늦었다고."
이 한마디가 그 어떤 말보다 가슴에 사무쳤다.

 어긋난 시간. 어쩔수 없는 타인의 속성. 그래서 다시 가스미가 말한다.

"...... 남자든 여자든 여간해서는 성장하지 않아. 한 사람 한 사람은 성인이어도, 같이 있으면 왜 그런지 어린애 같아."

하지만 사랑은 원래 아이처럼 이기적인 걸. 그리고 그 이기심.. 어떻게 보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바탕이 아닐까.
나 자신을 온전하게 사랑하지 않으면서, 다른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가능할지는 몰라도 한편으론 병적이야.

어쨌든 난 이 책을 들지 말았어야 하고, 늦은 밤 커피도, 날 각성시키는 담배도 피우지 말았어야 했다.
게다가 내가 가는 서점엔 2권은 있지도 않은데
책이 오기를 어떻게 기다리나 ㅡ,.ㅡ 
벌써 밝아오는 아침 하늘을 그저 한번 바라본다.

+

연애시대.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소담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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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오랜만에 들이킨 새벽 공기는 나름 괜찮더라.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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