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읽다'를 읽고



"어떤 이들은 고전이 진부할 것이라 지레짐작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래 살아남은 고전은 처음부터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웠는데 지금 읽어도 새롭게 다가옵니다. 다시 말해 지금 읽어도 새로운 것은 쓰인 당시에도 새로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전이라고 해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 역시 당대의 진부함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고전은 당대의 뭇 책들과 놀랍도록 달랐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그렇기에 진부함과는 정반대에 서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낡거나 진부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책들은 살아남았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후대로 전승되었을 겁니다."


올해 오디세이아를 읽게 된다면 그건 전적으로 김영하 때문이다.

마담 보바리, 돈키호테를 읽는다면 그것 역시..

이방인을 다시 읽는것도 그때문일 것이다.

작가 김영하가 자신의 '소우주'를 구성하는 책들에 대해서 준비한 짧은 산문들은 어떻게 독서를 할 것인가에 대해 알려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글을 쓴다면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미있는 내용들이 많다.

읽다와 쓰다는 한몸 같다.

책을 쓰는 작가는 최초의 독자이기도 하니까.


"우리는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 소설의 감춰진 중심부를 찾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설을 읽을 때 우리 머릿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소박하게 또는 성찰하면서 의도적으로 가장 많이 하는 작업입니다. 소설과 다른 문학 서사의 차이는 감춰진 중심부가 있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겠습니다. 소설에는 우리가 그 존재를 믿으며 찾는 감춰진 중심부가 있습니다. 소설의 중심부는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을까요? 소설을 만드는 모든 것이 그 재료라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중심부는 우리가 단어 하나하나를 따라 좇아간 소설의 표면과는 멀리 떨어진 배후 너머에 있어서 보이지 않고 쉽게 찾을 수 없는, 거의 계속 움직여서 잡을 수 없는 그 무엇입니다. "


오르한 파묵의 강연 중 일부라고 책에 소개된 내용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소설은 어떻게 쓰여야 할까?

감춰진 중심부를 상정한다. 사실 현대소설에서 이러한 중심부는 실체가 있기도 하고, 있는 "척"만 할때도 있다. 그러한 중심부를 향해 보이지 않고 쉽게 찾을 수 없도록 서술한다. 

독자의 눈앞에 안개를 드리우고, 발밑에는 낭떠러지를? 

아니다. 낭떠러지를 두더라도 개연성은 있어야겠지. 어찌되었든 장전된 총을 발사되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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