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삼국지2




중학교 삼학년, 아니면 고등학교 일학년 때 쯤일까.
이런,이런,, 저때가 까마득하게 느껴질 만큼 나이를 먹은 건 아닐텐데. 
아무튼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무렵이었다.
그 당시 허큘레스라는 그래픽 카드에 OS는 DOS를 사용했던 대우의 역작(?) 아이큐 슈퍼를 쓰고 있었다.
디스크 하나에 1.44Mb, 사이즈는 5.25인치가 돌아가던 때니까 말 다했지.
친구들과 불법 복사를 해주던 시내 책방 구석탱이에서
13장-15장에 이르는 원숭이 섬의 비밀, 페르시아 왕자(이 게임은 여전히 최고의 게임!!)를 복사해서 희희낙낙하며 집으로
향하곤 했다.
원래 진득한 성격이 못되는 나였기에 대부분의 게임은 금방 질리기 마련이었는데 유독 빠지게 되었던 게임이
두둥... 삼국지2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을만큼 빠져들었었다.



마우스도 사용하지 않던 시절
게다가 위에 올려진 샘플처럼 칼라 모니터는 언감생심 접하지도 못할 때
그저 껌뻑껌뻑 거리는 커서위에 키보드로 한자씩 실행 명령을 쳐 넣을 때면 묘한 긴장감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사각형의 셀에서 번갈아가며 공격을 하는 단순한 진행
매뉴얼에 짜여진대로 말 주고, 금화 주고, 달래면 넘어오는 여포 같은 캐릭터들
그런데 그 당시엔 저 단순한 화면 속에 모든게 있었다.
게임에 빠진 아들 걱정에 금지령이 내렸지만, 문틈을 이불로 막아가며 했다는..ㅡㅡ;;

그런데 이젠...

무엇인가에 그렇게 빠져들 수 있을까?
궁금하다.
어떤 것에 빠져든다는 것.
어느새 굵어져버린 머리는 늘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외면하려하고, 안주하려하고 그래서 제자리에서 맴돈다.
다시 삼국을 통일하고 녹색 모니터속에서 올라가는 깃발을 볼 수 있을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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