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멈췄더라면 더 행복했을까.

어떤 얘기들은 들숨과 날숨에 섞여 사라지고,
또 어떤 얘기들은 황금빛 안개에 젖어 땅에 내려 앉는다.
그러니 그렇게 사라지는 말의 씨줄과 낱줄을 엮어
부끄러운 글이라도 끄적이는 것은 종요롭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말이다.
그 부끄러움이 사라졌으면 한다.
드러냄이 여전히 두려운 맘 한켠은 도려내버리고
멈추지 않는 글을 쓸 수 있을 때엔 정말 정말 통속적인 사랑 얘기나 하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 그 얘기는 이렇게 시작하면 좋겠다.

"거기서 멈췄더라면 더 행복했을까"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내가 말하고 싶더라도 어차피 해 본 적도 별로 없는 얘기들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럴바엔 차라리 누군가가 어떻게 했다더라..고 말하는 편이 좋겠다. 우릴 둘러싼 이곳의 주류는 어느새 '~~~카더라'가 차지해 버렸으니까. 그리고 그 카더라는 어느새 그 이면에 반기를 들고 전복하기에 이른다.
"예전에 말이야. 꽤나 순진했었던 때, 학교 앞에서 자취하는 집에 친구녀석이 찾아왔어. 자기 여자 친구를 데리고.
술이 이만큼 취해서는 차가 끊겨서 재워달래는 거야. 그리 마뜩치는 않지만 밤이 깊어 그러마 했지. 마침 옆방이 비어있기도 했고. 그런데 이녀석이 자래는 잠은 안자고, 밤새 시끄럽게 그 여자친구랑 엎치락 뒤치락 하는거야. 다음날 아침에 술도 덜 깬 그녀석을 거실에 불러놓고는 일장 연설을 했지. 너 이게 뭐하는 짓이냐. 엉. 저 여자친구는 앞으로 니가 책임질꺼냐.부터 시작해서 남녀간의 사귐이 어쩌고 저쩌고. 그걸 내내 참고 듣고 있던 그 녀석도 대단하고, 방 한칸 내어주고는 남의 연애사에 미주알 고주알 따지고 들던 나도 꽤나 나이브했지.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다 빨개질일 아니겠어."
"근데 말이야. 그랬던 맘 그대로 거기 멈춰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의 나는 커버린걸까 아니면 변해버린걸까?"
 이야기는 늘 채워지지 않은 곳에서 시작한다. 결핍. 가득차버린, 채워진 곳에서도 있지만 이미 채워져버린 덕분에(?) 더 이상의 여지가 없다. 버석거리는 입안 어딘가의 불쾌함은 그것을 뱉어버리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키고,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하기 마련이다.

이야기의 시작치곤 꽤나 칙칙하지만,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그렇게 정해져있다. 어차피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아무도 타지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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